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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 회장은 누구인가…샐러리맨에서 STX 총수까지 영욕의 40년

상고와 야간대 학력.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산 공채 출신 CEO.

제2의 김우중으로 불리던 강덕수(63) STX회장. 그가 영욕의 기업인 생활을 마감할 위기에 처했다. STX 주력 계열사인 STX조선해양 채권단이 대표이사 교체안을 강행한 것이다.

재벌 2세 또는 일명 KS(경기고-서울대) 라인이 즐비한 CEO 세계에서 강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 중 신화였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 7월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강 회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동대문상업고등학교와 명지대 경영학과 야간을 나왔다. 그는 1973년 쌍용그룹 계열사 쌍용양회 평사원으로 입사하면서 기업인의 삶을 시작한다. 마침 올해는 강 회장의 사회생활 꼭 40년이기도 하다.

인맥과 스펙이 출세 조건인 한국 사회에서 그는 탁월한 업무 감각으로 30대 부장 직함을 달고, 1995년 쌍용중공업 이사, 2000년 쌍용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강 회장은 특히 재무·회계에 능해 '계산기보다 강덕수 암산이 빠르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단문형·순한글 공채 광고를 만드는 등 기획과 마케팅 분야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평소 지인들에게 "스스로 월급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임무를 맡으면 내가 오너라는 자세로 일해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됐다. IMF로 쌍용그룹 경영난이 악화되자 당시 쌍용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였던 강 회장은 전 재산을 밑천삼아 회사를 인수했다. 월급쟁이에서 오너가 된 그는 2001년 STX를 만들었고 선박엔진을 중심으로 조선업, 해운업 등으로 사업을 늘리며 재계 13위까지 사세를 확장했다. STX는 출범 10년만에 2011년 매출 100배 성장, 임직원 수는 900명에서 6만7000명으로 75배나 증가했다. 경쟁 기업 입찰가의 2배를 써내는 화끈한 인수전은 업계 전설로 남았다. 전세계가 놀란 성장 속도와 업계 최고 대우 등으로 국내외 유수 인재들에게 STX는 신의 직장 중 하나였다.

강 회장의 공격적인 투자는 STX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2009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나오는 STX의 수익구조가 강점이 아닌 약점이 된 것이다. 과도한 M&A로 인한 부채 증가와 함께 해양업계 침체로 대형 수주가 물거품이 되는 악재도 이어졌다.

끝내 STX는 올봄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창사 최대 고비를 맞았다. 계열사 지분 매각 등으로 경영 정상화를 꾀하고 있지만 기업의 공중 분해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 STX 노조는 강덕수 회장을 옹호하지만 채권단은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태다.

강 회장은 '인생은 영원한 도전'이라 표현했다. 그에게 샐러리맨 신화 40년을 내건 도전 또는 승부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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