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여덟 권의 책을 내면서 못 썼든 잘 썼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반영했기에 다 정이 가지만 대놓고 후회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직장여성들을 위한 커리어 에세이였는데 '일과 가정의 양립이 힘든 건 잘 알지만 어떻게든 하면 가능하다'는 식으로 써놓은 부분이다. 담당 편집자가 기혼 직장여성들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추가로 써넣자고 한 것을 당시 임신중이던 내가 스스로를 다독이는 의미에서 덜컥 수락하고 썼다. 직접 경험하기도 전에 그에 대한 낙관주의를 펼치다니, 그것은 성급하고 잘못된 행동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는 글로 약을 판 셈이었다. 일하는 엄마들을 둘러싼 현실은 훨씬 더 정교하게 복잡하고 위태위태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이루기는, 둘 다 어느 정도 잘 해낼 수 있다,가 아니라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함을 의미했다. 그 둘 중 하나는 대개 가정이다. 집에서 일을 하는 프리랜서인데도 힘겨운데, 야근이 잦은 여성 회사원들은 대체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 갔다. 힘겨운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사노동이 여성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평균적 한국남자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꾸는 일이 특히나 마음을 맵게 한다. 그간의 안락함이 타인의 노동을 댓가로 얻어진 것임을 깨닫는 과정 속에 많은 불편함이 발생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은 심신이 소모된다. 변화는 모두에게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여자들이 가급적 사회적 일을 가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일은 때로는 싫어하는 것도 참고 타인과 합의를 보면서 자기주장을 해나가는 것이고 그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강인함도 몸에 붙는다. 인간은 무엇보다 '일'을 통해 성장한다. 혈연이 아닌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을 때 얻어지는 감정적 충만감도 크다. 경제적 독립 역시도 불확실한 세상에서 중요하다. 지난 명절 때 어쩌면 그녀들은 '가정을 잘 지키는 것만큼 인생에서 소중한 건 없다'며 살림과 아이 대신 밖으로 일하러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어르신들의 눈초리를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이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분명히 존중받을 만한 이유가 있음을 잊지말자.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