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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권기봉의 도시산책] <52>두 번의 재해석

▲ 국립극장



서울 남산을 걷다 보면 산보를 나온 시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특히 예전보다 한결 산뜻해진 국립극장 주변도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애당초 국립극장은 서울시청 맞은편, 지금의 서울시의회 청사 건물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부민관'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 뒤 문화공연을 비롯한 각종 친일 집회가 열리는 곳이었는데, 1950년부터는 국립극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관한 지 두 달만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국립극장 지위를 대구문화회관에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년... 전쟁은 멈췄지만 국립극장은 부민관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부민관에 국회가 입주하면서 어쩔 수 없이 명동에 있던 '시공관'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현재 명동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명동예술극장이 그것이다.

남산 국립극장 건립사업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은 박정희정권 들어서였다. 자신의 만주국군 장교 전력을 가리기 위한 아이디어 중 하나로 이른바 '민족전통문화'를 강조했는데, 그 과정에서 민족문화센터와 국악인양성소 건립 계획이 나온 것이다. 지금의 남산 국립극장의 모태들이다.

설계를 맡은 이는 이희태란 인물이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는 등 그 시대의 다른 건축가들에 비하면 배경이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건물 디자인은 신선하면서도 전통 건축을 재해석했다는 평을 받았다.

경복궁 경회루에서 영감을 얻어 14개의 수직 기둥을 5미터 간격으로 곧추 세우고, 끝에 십자형 날개를 달아 자칫 육중해 보일 수 있는 기둥에 상승감을 불어넣었다. 애당초 외벽에는 화강석을 붙이려고 했지만 공사비가 부족해 쉽지 않았다. 그건 노출된 콘크리트를 일일이 정으로 쪼아 화강석 느낌을 나게 함으로써 해결했다. 화강석 가격보다 인건비가 싼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노후한 외관에 대한 지적과 대형 공연이 가능하게끔 내부 수리를 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결국 완공 30년만인 지난 2003년, 리노베이션 사업이 시작됐다.

이때 설계를 맡은 것은 고 이희태 선생이 설립한 설계사무소였다. 선학이 짓고 후학이 가꾸게 된 셈인데, 선학인 이희태 선생이 경회루를 재해석해 국립극장을 지었다면 후학들은 그 국립극장을 다시 재해석해 보다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국립극장 관람객이 공연 외에 건물에까지 시선을 두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국립극장 그 자체가 품고 있는 이야기도 하나의 멋진 공연에 버금가는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다. 개관 40주년을 맞은 요즘, 남산의 단풍도 좋지만 남산 국립극장도 눈여겨볼 일이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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