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CEO와칭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경제>경제일반

[권기봉의 도시산책] <54> 창경궁이 휑한 이유



조선 왕조의 오랜 수도였던 서울에는 그만큼 화려한 궁궐들이 여럿 남아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창덕궁을 비롯해 가장 먼저 지어졌던 경복궁과 가장 나중에 궁궐로 쓰인 경운궁(덕수궁), 그리고 완전히 철거됐다가 다시 지은 경희궁까지. 지금은 주말이나 평일 할 것 없이 국내외 여행자들이 몰리고 있다.

그런데 창덕궁과 붙어있는 창경궁을 거닐 때면 왠지 모를 비애감에 젖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아있는 건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인데, 창경궁에 이른바 '창경원'이라는 동식물원을 만든다는 구실로 오래된 전각들을 헐어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버린 탓이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왼쪽 구역이 넓은 잔디밭으로 변해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창경원은 말 그대로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든 것이었다. 하마와 원숭이를 비롯해 백학이나 구렁이 등 온갖 동물들을 가져다 놓았고 '새로 시집 온 처녀 물개' 따위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또 전각들을 헐어낸 자리에는 이후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조선 왕조의 위엄이 서려 있던 창경궁이 한낱 놀이동산 따위로 격하된 것이다.

해방 뒤에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은 아니어서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박정희 정권 내내 그 운명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서서히 본모습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81년 창경궁 복원 계획이 나오면서부터였고, 84년 들어 동물원을 경기도 과천으로 옮겨 지금의 서울대공원을 만들면서 비로소 창경원의 동물원 시대가 마감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그리고 해방 뒤 여러 해 동안 동식물원과 유원지로 쓰일 때의 모습이 원래의 것으로 완전 회복된 것은 아니다. 아직은 경복궁 등을 다시 짓는 데 매진하고 있는 터라 창경궁까지 관심이 가는 데에는 아직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망한 왕조의 궁궐이 감내해야 할 운명은 그렇게 기구하다. 오늘은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뀐 지 꼭 104년이 되는 날이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