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커쇼는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다. 최고란 수식어를 넘어 '다른 투수'라고 동료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커쇼의 자유계약과 관련된 전망이 프로야구계의 화두다. 10년 동안 3억 달러 수준의 몸값이 전망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재계약 내용이 어떻게 되든 2014년도 다저스의 투수'라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것에 전념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판단 만큼은 존경스럽다.
디자이너 론 아라드는 '현재를 잘 들여다 보라. 미래가 뚜렷이 보일 것이다. 현재란 너무 환상적이라 멈출 수 없고, 미래에 대해 걱정할 틈이 없다.'며 '내일'을 운운하며 온갖 걱정을 늘어 놓는 이들에게 소견을 피력했다. 내일을 위한 디자인이란 결국 오늘 보여지고 판단되며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즉, 백 년 디자인이란 것 역시 오늘에 유효할 때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대체 우리는 왜 항상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앞당겨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유비무환은 진리일까?
서점가에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란 책이 만만찮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1세기 영적 교사로 지목 받는 인지도의 영향도 있겠으나, 책의 내용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로 일관된 것이 독자의 가슴을 두드린다는 평가다. 저자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생각이란 게 결국 내가(EGO)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며, 역시 만들어 낸 시간인 미래에 대한 허상을 정립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에 '생각이란 게 만들어지고 정의되는 의식인데, 그것이 존재와 같은 수준'인지 되묻는다.
정치는 언제나 과거에 일어난 어떤 일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점철된다. 경제정책은 확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예측을 담보로 장밋빛 계획으로 도배된다. 언론은 불행이 증폭될 수 밖에 없는 비관과 우려를 퍼뜨리는 게 소임인 것처럼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어디에도 현실을 직시하거나 용감하게 맞서 응대하는 모습은 없다. 당연히 책임론에 목매고 과거청산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오늘을 향유하지 못하고, 내일을 명분 삼아 귀중한 현실을 소모하는 관성에 끌려 다니는 꼴이다.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된 명언, 'Carpe Diem(현실 을 잡아라)'을 새겨보자. 두 달 남은 2013년 만이라도 '너무 환상적'인 현재를 맛보는 시간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