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화분을 정리했다. 이런저런 명분으로 회사에 들여진 화분은 겨울을 나기에 부실해 보였다. 십 여 개 화분의 분 갈이를 해보니 화분 속은 쓰레기장이었다. 나무의 뿌리부근부터 바닥까지 스티로폼, 비닐로 가득했다. 흙이 귀했나. 필시 손익을 맞추기 위해서였으리라. 사실 이유보다 꽃과 나무를 다루는 사람의 손이 궁금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다루는 손으로 대표적 환경오염 물질을 화분에 넣은 손. 그 손 끝에서 재명을 다하지 못한 생명은 얼마나 될지.
타샤 튜더는 '훌륭하고 가치 있는 것은 모두 시간과 공이 들게 마련'이라 했다. 동화작가로서보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일상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인 '살림의 예술'가로서 더 알려져 있다. 가사를 하찮게 여겼던 젊은 여성들에게 순수한 노동의 의미를 남겼다. 또, 노동의 정직함을 통해서 인간관계 회복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녀 앞에서 친환경, 수공예는 한낱 허영에 불과했다.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도 다르지 않다. '손맛'이 세상을 살리는 불로초임을 생활로 보여주고 있다.
반 고흐의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을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궁핍한 생활의 끝을 보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젓는다. 움푹 패인 볼을 가리키며 좀비(Zombie) 운운하기도 한다. 평생 새벽 어둠에 일어나고, 뙤약볕에 얼굴 그을리고, 새까만 밤에 바느질하는 노동의 삶을 가여워 한다. 한편으로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살지 않을 거라 다짐한다. 어쩌면 귀하고 아름다운 꽃 아래 썩지 않는 화학의 부산물을 넣는 마음의 출발점인지도 모르겠다.
마더스푼(Motherspoon)이란 게 있다. 밥주걱 모양으로 생긴 이 제품은 '어머니의 맛'을 재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머니가 이 스푼을 이용해 요리하면 스푼의 센서는 사용된 재료의 종류와 양, 순서 등을 동영상으로 저장한다. 입력된 데이터는 딸의 주방에 놓여진 스푼에 자동으로 공유된다. 손님맞이를 위해서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야 하는 번거로움은 사라진다. 스푼이 보여주는 레시피대로 요리하면 그만이다. 디지털 기기의 성능 목표가 '사람처럼'인 점을 감안하면 놀랍지도 않다.
손맛은 프로세스나 노하우가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 뿌리를 둔 어떤 에너지의 현존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드러내는 태도가 절반 이상이다.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건넬 손맛 하나쯤 갖고 살자. /인터패션플래닝 박상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