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줄이 오르는 생활요금 / 그래픽 박상철 기자 estlight@
# 고등학생 두 자녀를 둔 직장인 A(48·남)씨는 올해 회사 사정이 어려워 연봉이 1000만원 가량 줄었다. 그러나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 등은 천정부지로 올라 동료들과 즐겨하던 술자리도 피하고, 점심도 혼자 김밥 등으로 때우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중이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3000만원이나 올려달라고 해 미치겠다"고 하소연하는 후배를 보며 '그나마 난 집 한채라도 있지'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 3년전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은 B(54·남)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주위에서는 택시 기본료가 3000원으로 올라 좋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수입이 줄었다. 사람들이 택시를 타려고 하지 않아 한달에 150만원 벌이도 어려운 실정이다. 매일 12만원씩 내는 회사 사납금이 당장 다음달부터 14만5000원으로 인상돼 눈앞이 캄캄하다.
경제 불황 여파로 셀러리맨의 지갑은 가벼워진 반면, 생필품과 공공요금은 줄줄이 인상되거나 인상될 예정이어서 서민 생활의 기반이 무너질 위기다.
전기료, 지역건보료에 이어 지역난방요금도 다음달부터 오를 전망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그동안 연료비 상승이 있었지만 정부의 물가안정시책에 맞춰 요금인상을 억제해 왔다. 지역난방비는 1년에 4차례(3, 6, 9, 12월) 조정되는데 올해는 7월에만 가격조정(4.9%)이 이뤄졌다.
도시가스도 들썩인다. 서울시는 "도시가스 요금을 지난해 동결한 바 있지만 인건비 상승, 사회배려 대상자 지원 등 여러 인상요인이 있어 다음달 소폭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활물가도 줄줄이 올랐거나 오르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전국 16개 광역시·도의 평균 생활물가 인상률을 보면 미용료는 1만2874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776원(16%)이나 올랐고, 여관 숙박료도 3만8527원으로 4247원(12.4%) 올라 두자릿수 상승세를 기록했다. 비빔밥이나 냉면·칼국수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외식비와 목욕료·세탁료 등 개인서비스요금도 대거 인상됐다. 우윳값 인상은 다른 유가공 식품 가격도 위협하고 있다.
샐러리맨의 월급까지 위태롭다. 국민연금 등 급여에서 기본으로 떼는 돈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공공요금의 핵심인 전기요금은 21일부터 평균 5.4% 인상이 확정됐다. 최근 3년간 5차례나 요금이 올랐다. 월평균 310㎾h를 쓰는 가구의 경우 인상 전 4만8820원에서 5만130원으로 올라 매달 1310원을 더 납부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도 어렵다지만 가정이 받는 충격은 더욱 크다.
문제는 가계마다 늘어나는 부채다. 서민의 경우 저금리 때문에 버티고는 있으나 저축은 고사하고 오히려 빚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소득 1분위(하위 20%)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1000만원에서 올해 1246만원으로 24.6% 늘어난 반면 5분위(상위 20%)는 지난해 1억3723만원에서 올해 1억3721만원으로 줄어들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공공요금의 인상, 전세가 인상과 월세 압박 등의 악재는 앞으로 서민 부채의 증가를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직장인은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의 인상은 다른 부문은 물론 먹고 입는 생활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연쇄적인 물가상승을 불러올 것"이라며 "정부는 '민생안정'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지만 행태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규모 공장을 운영중인 중소업체 사장은 "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주고 싶은데 경영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젠 전기료까지 오른다고 하니 차라리 공장 문을 닫는 게 낫겠다"고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