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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권기봉의 도시산책] <57>독립문의 비밀

▲ 독립문



서울 성산로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커다란 돌문이 하나 서있다. 조선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그밖의 서구 열강과 같은 자주독립국임을 국내외에 선포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독립문'이다.

애당초 독립문 자리에 있던 것은 독립문이 아니라 '맞이할 영(迎)' 자에 '은혜 은(恩)' 자를 쓰는 '영은문'이었다. 근처에 있던 '모화관'과 함께 한양에 당도한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기 위한 시설로, 지금은 독립문 앞에 영은문을 떠받치고 있던 돌기둥 두 개만 우두커니 서 있다.

독립문은 어떻게 영은문을 밀어내고 들어서게 된 것일까?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영은문을 헌 것도 독립협회나 조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기둥돌 두 개만 남겨 놓고 모두 헐어 버린 것인데, 그 뒤 이완용 등이 조직한 독립협회가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뿐이다.

일제강점기 들어서는 더욱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일본이 중국 대륙에 대한 침략 야욕을 불태우던 1928년, 지금의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경성부청이 파손이 심했던 독립문을 수리한 것이다. 1936년에는 독립문을 아예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기에 이른다.

조선의 자주독립 의지가 녹아 있는 건축물이라고 알고 있는 독립문을 일제가 나서서 수리하고 보호한다? '왕의 나라' 조선이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이 되었음을 선포한 환구단을 철거해버렸으며, 조선의 중심 궁궐인 경복궁을 파괴하고 창경궁은 창경원이라는 동식물원으로 전락시켰던 전례에 비춰보면 의아할 따름이다.

그 난해함의 단서는 앞서 1876년 조선과 일본이 맺은 강화도조약에서 찾을 수 있다. 조문을 살펴보면 '조선은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조항이 있다. 이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국과 맺은 시모노세키조약 조문에도 제1조에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본이 영은문을 헐어 버린 이유나 청국과의 조약에서까지 굳이 조선의 자주독립을 운운한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조선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인 종주국 지위를 청산함으로써 중국의 간섭 없이 조선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트기 위한 노림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독립문의 '독립'은 완전무결한 조선의 자주독립 의지를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것도 순전히 일본 입장에서. 독립문과 그 주변을 '서대문 독립공원'이라 부르며 성역화하다시피 하고 있는 오늘날의 독립문, 그 이면에는 이처럼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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