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은동네거리에 가면 세운상가를 닮은 상가형 아파트를 만날 수 있다. 동서 방향으로 길이 200m미터 남짓, 폭 50m 정도로 상당히 육중한 모습이다. 지난 1970년 들어선 '유진상가'(사진)로, 1층 전체와 2층 일부는 상가로 쓰이고 나머지 3~5층은 주거용으로 이용되는 주상복합아파트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층 북쪽 부분에는 그저 기둥만 세워져 있을 뿐 하나 같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비워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한 건데, 그 이유는 바로 군사적인 데 있었다.
유진상가가 들어선 홍은동네거리 일대는 만약 북한군이 구파발을 돌파해 남하할 경우 막아내야 할 마지막 방어선에 해당한다. 거기가 뚫리면 무악재 너머로 바로 청와대를 비롯한 서울 한복판에 다다를 수 있어서다. 그런 그곳에 북한군 전차에 대응할 수 있는 튼튼한 진지를 만들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주거지와 상가가 밀집한 까닭에 별도의 진지를 만들기에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택한 방법은 유신상가 1층의 북쪽 부분을 모두 기둥만 세운 채 비워두는 것이었다. 북한군의 곡사화기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국군 탱크 한 대가 쏙 들어갈 만한 규모로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폭과 높이를 설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울 시내의 다른 어떤 건축물보다도 단위면적당 많은 콘크리트와 철근을 넣어 튼튼하게 지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후퇴해야 할 경우 한쪽 기둥만 폭파하면 건물 전체가 길게 쓰러질 수 있도록 해 북한군의 남하 속도를 늦출 수 있게 했다. 건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참호이자 대전차 장애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진상가가 지어지기 직전 한국의 상황은 한마디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내부적으로는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움직임에 시민들의 저항이 날로 격화되고 있었다. 외부적으로도 1968년 1.21 사태에 이어 미군 정보함인 푸에블로호가 북에 납치됐고 그해 말에는 울진과 삼척지역에 북한 무장공작원들이 침투하기까지 했다. 박 정권이 서울을 요새화하는 사업, 즉 유사시 수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 남산 1~2호 터널을 건설하고 청와대 방어를 위해 북악스카이웨이 등을 뚫은 이유이다.
물론 2013년 현재 유진상가나 남산터널, 북악스카이웨이를 두고 지난 시대의 남북 대결을 떠올리는 이들은 많이 없다. 그러나 남북의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 곳곳을 걸으며 지나간 시대, 그러나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산적한 이 땅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