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봉한 '열한시'는 국내 영화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타임스릴러 장르다.
시간여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연구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24시간 뒤의 미래에서 가져온 폐쇠회로(CC)TV에서 자신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시간을 추적해 나간다는 이야기다. 연구원들은 죽음을 막으려고 애쓰지만, 오히려 이런 행동이 점점 예정된 죽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동안 '닥터진' '나인:아홉번의 시간여행' 등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많았지만 영화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시도만으로 주목할 만 하다. 관객들이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등 대작들로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시간여행 소재는 거대한 스케일을 구현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돼 할리우드 영화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일단 이 영화는 적은 예산이라는 핸디캡을 안고서도 이질적인 분위기로 사건을 긴장감 있게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자칫 복잡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를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연결하는 시나리오 구성도 탄탄한 편이다.
또 아무리 바꾸려고 노력해도 예정대로 흘러가는 미래와 자신이 살고자 상대를 희생시켜야 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처한 연구원들의 행동을 통해 거대한 운명 속 인간의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 선과 악의 판단 등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주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시간이동에 집착하는 천재 물리학 박사 우석 역을 연기한 정재영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서서히 변해가는 감정 변화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우석과 대립하는 지완 역의 최다니엘과 사건의 유일한 단서인 CCTV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영은 역의 김옥빈도 충실히 제 몫을 해냈다.
물론 이 영화는 한정된 시간과 비용 때문에 스케일 면에선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심해에 위치한 연구소의 전경에는 세밀함이 없고 과학적인 고증을 거쳐 디자인됐다는 타임머신은 식상하다. 공간이 연구소 한 곳으로 집중된 만큼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볼거리도 턱없이 부족하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연구에 막무가내로 집착해 연구원들을 위험을 빠뜨리는 우석 등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의 당위성이 잘 설명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그러나 SF가 아니라 단지 시간이동을 소재로 했을 뿐인 스릴러 장르라는 점에 방점을 놓고 본다면 색다르고 긴장감 있는 스릴러물 한 편이 탄생했다고 평가받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