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용두역 근처를 걷다 보면 청계천 한복판에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일반적인 기둥이 아니라 지금은 철거돼 사라진 청계고가 교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두 3개로, 그 중에는 머리에 청계고가 상판을 이고 있는 것도 있다. 지난 2003년경 청계천 복원 사업을 하면서 청계고가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린 게 아니었다.
청계천이 덮이기 시작한, 즉 복개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때였다. 1937년부터 42년까지 광화문우체국 앞 대광통교 근처에서부터 영풍문고가 있는 광통교 인근까지 복개됐다. 이어 해방 뒤 이승만 정권 때에는 흥인지문 옆의 오간수교 언저리까지 도로 밑에 파묻혔다.
그렇게 복개되기 시작한 청계천이 도로 밑에 완전히 잠기게 된 것은 박정희 정권 들어서였다. 1965년 약 8㎞에 이르는 구간을 복개함으로써 최대 너비 84m에 이르는 청계천이 사대문 안에서는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청계천 복개도로로 인해 도심 교통이 좋아졌다는 찬사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라는 지적과 부실 시공을 한 나머지 건설비보다 유지관리비가 훨씬 많이 들어가는 애물단지라는 비판을 받았다. 급기야 청계고가 및 복개도로 철거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청계천 복원 사업이 추진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청계고가도 전면 철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무조건 없애버리는 것도 옳지 않다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좋든 싫든 개발시대의 주요 현장이기에 그 흔적을 일부라도 후대에 남겨야 한다는 얘기들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일단 부수고 새로 짓는 데에만 익숙했던 것이 사실이다. 재개발이나 복원이라는 미명 아래 허물어져나간 역사 현장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역사란 걸 책이나 사진을 통해서만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야 비록 그 가치가 커 보이지 않을 지라도 앞으로 청계고가의 세 교각들이 도시 개발에 앞서 고민해야 할 지점들에 대한 지침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