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두번째 생신을 맞으신 할머니께서 밥 두 공기 싹싹 드시며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웃으며 얘기하시는데 그걸 듣는 며느리는 더 이상 밥이 안 넘어간다.
자신이 환갑나이의 며느리가 되어 노할머니를 모시는 미래를 상상해보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시어른과 함께 사는 친구의 솔직한 토로에 들어서는 안 될 불순한 마음을 엿들은 양 뜨끔했던 이유는 나 역시도 그런 복잡한 마음을 품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여든 넘어 첫 친손녀를 보시고선 감격에 겨워 '이 아이가 초등학생 입학하는 걸 보고 죽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라고 말한 게 어언 육년 전, 이젠 한 때의 기적이 현실로 코 앞에 다가왔다.
작년 생신 때는 스스로 대견해하시며 '어쩌면 중학교 입학하는 것까지 볼 지도 모르겠다'며 농담하시는데 순간 삶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집착이 느껴져 속이 화끈거렸다.
'마음이 복잡한 이유는 취약한 존재에 대해 악감정을 갖게 되는 죄책감'이라고 친구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점점 이기적으로 자기 건강을 탐욕적으로 챙기는 어르신의 모습이 마냥 좋아보이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니 그저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또 안 좋다. 노인은 살고 싶은 욕심은 크지만 삶에 대한 열정은 없다는 것도 그 건강의지를 공허하게 만드는 이유다.
다른 집들은 어떻게 어르신들의 생일을 보내는지 궁금하다. 연말에 양가어른들의 생일이 다 몰린 우리는 대개 식당에서 형제들이 분담하여 함께 식사를 하거나 누군가의 집에서 고기와 미역국이 있는 생일상을 차린다. 의식은 매번 같다. 식사 후, 소극적인 생일축하노래와 더불어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자식들은 주섬주섬 봉투를 꺼낸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면 억지로 씌여진 생일 축하카드가 동봉될 것이다. 희한하다. 사이가 안 좋은 가족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매해 더 빨리 반복되는 것 같은 이 모든 의식에서 진심어린 축하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생일을 축하하기보다는 어째 생일을 '치룬다'는 느낌이다. 속이 시커먼 나만 그런 거라 믿고 싶다. 아니면 진정 장수란 축복 아닌 재앙인가.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