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노사갈등으로 시끄럽다. 언제부터인가 노사갈등은 한 번쯤 불거지고 달래져야 할 세밑 통과의례가 됐다.
노사 협상은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생존 문제다. 근로에 대한 권리와 기업 영속성에 대한 책임의 줄다리기는 쉽사리 합의되지 않는다. 어쩌면 인류가 노동으로 생산가치를 정하고 분배했던 시간부터 이어지는 가장 오래된 다툼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두 생산 주체 간의 이견이 소비자 혹은 대중에게 불편을 혹은 불상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철도파업으로 팔순의 할머니가 숨진 일은 단순한 사고로 치부할 수 없다.
지난 주말 한 미디어에 '예의 없는 손님에게 돈 더 받는 이색 카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 즉, 프랑스 남부지방 니스에서 영업 중인 '라 프리티 시라(La Petite Syrah)'는 '커피 한 잔'이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7유로, '커피 한 잔 주세요'라는 주문에는 4.20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소비자에게는 1.40유로의 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종업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야겠다는 지배인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 덕분에 대부분의 직원이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근로가 아닌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재미삼은 아이디어의 실천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어떤 형태의 조직이든 성장을 도모하려면 반드시 대립적 커뮤니티가 형성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방향일지라도 한쪽으로 쏠리면 자가당착에 빠지기 십상이다. 직원 사이에, 노사 간에, 부서 간에 적당한 긴장감을 동반한 대립적 분위기가 있을 때 조직은 튼튼한 다리를 갖게 된다.
여기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 직무에 대한 권력화가 배제돼야 하고 동료에 대한 신의와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 소위 '동업자 정신'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공적 입장에서는 엄격하게, 사적 입장에서는 너그럽게 관계를 정립하는 게 좋다. 그래야 직장이 밥벌이를 위한 스트레스 양산처가 아닌 일상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
노사 갈등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표면화되지 않은 원인이 핵심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고 싶은 주장의 이면에 깔린 부정적 의지, 그 의지를 만들어 내고 키워가는 무조건적 거부감이 진짜 위협 요소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할 수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제럴드 잘츠먼(Gerald Zaltman)에 따르면 이는 심각한 착각에 불과하다. 카페 라 프리티 시라의 사례만으로도 노사 갈등 해소를 위한 출발점을 찾을 수 있겠다. 새 해에는 모두가 신명 나는 놀이터 만들기에 나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