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는 단순히 서울의 한 도로가 아니다. 권력과 경제, 언론의 중심도로이자 조선 개국 이래 역사의 중심도로라 할 만하다.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산에 있던 조선총독부가 1920년대 중반 이후 세종로의 시작점이자 경복궁 초입으로 청사를 확장 이전했던 예에서 알 수 있듯. 그런 조선총독부 청사는 해방 이후 김영삼정권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이유로 철거해 버릴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많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경복궁의 조선총독부 청사. 그런데 과연 철거만이 능사였을까?
기본적으로 그 건물을 없앤다고 해서 한국이 식민지배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사실이 바탕이 된다. 그렇기에 있었던 사실과 그 현장을 되도록 많이 기록하고 남기는 것이 바람직한 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치욕스러운 역사로부터 배울 바를 찾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기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런 면에서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건물은 해방 뒤 제헌국회가 열린 곳이자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곳이며, 초대 대통령을 선출한 곳일 뿐만 아니라 9·28 서울 수복 때에는 태극기를 건 상징적 의미가 있던 공간이다. 일제의 통치기구이기도 했지만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벌어진, 한국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뒤 원형 돔과 같이 상징적인 부분은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놓았다.(사진) "지하 5m 깊이에 묻어 전시함으로써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자 한다"는 안내문도 함께 세워두었다. 또 일부 부재들은 서울역사박물관 앞 마당에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갑작스런 철거와 그 뒤 이어진 '5m 깊이 매몰'과 같은 주술적인 행위를 통해 일제 잔재가 청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작 현실에서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 예산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삭감되었고,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중단되고 말았다. 또 최근에는 민족해방운동가에 대하 서술은 줄인 반면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듯한 내용으로 점철된, 즉 역사왜곡과 식민사관에 근거한 한국사 교과서가 버젓이 교육부의 승인을 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한낱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가 아니었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