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저녁 공연 직전 만난 싱어송라이터 박기영(37)은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말하는 내내 아이처럼 해맑고 따뜻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아마 출산을 한데다 복귀작으로 택한 이 작품에서도 매일 아이들과 함께 해서인 듯 했다. 그는 "아이를 낳고 나서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금쪽 같은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돼 아무도 미워할 수가 없게 됐다"면서 "이 뮤지컬을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출산 후 1년 만에 복귀 "딸 얼굴 아른"
처음 해보는 뮤지컬인데다 출산 후 1년 만에 복귀해 무대에 오르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제 갓 세 살이 된 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출산으로 몸무게가 18kg 불어난 상태였는데 모유수유를 열심히 했더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더라고요. 대신 딸이 보통 아이들의 몸무게 두 배 정도 되는 우량아가 됐죠. 딸을 키우면서 너무 예뻐서 매일 안아주다보니 팔이 아파서 침을 맞으러 다녔답니다. 하하하."
지난 1년간 딸과 한 몸이 될 정도로 꼭 붙어 다녔다고 했다. "평소 절친한 배우 정혜영의 셋째 딸 하율이의 옷을 물려받아 입혀 1년 간은 옷 값 걱정은 안 했다"며 그동안의 일상도 털어놓았다. 그런 만큼 아이와 떨어져 다시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공연 연습을 시작한 처음 일주일은 그야말로 '멘붕'이었어요. 뒤늦게 캐스팅이 돼 다른 배우들보다 연습량이 부족한데 대사량은 엄청나게 많고, 딸까지 떼 놓고 오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다행히 딸은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이 봐주시고, 공연 연습은 마리아를 번갈아 연기하는 소향이가 많이 도와줘 해낼 수 있었답니다."
딸 때문에 낮 공연 위주로 하고 있다는 그는 "늘 가수로 혼자 일하다 다른 배우들과 함께 뮤지컬을 해보니 너무 즐겁다"면서 "딸이 내가 집에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잠을 자지 않아서 뒷풀이 회식은 가고 싶지만 포기했다"며 웃었다.
4일부터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활발하고 노래를 좋아하며 모든 것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을 가진 주인공 마리아로 출연 중이다. 며칠 전 있었던 첫 공연을 떠올리며 아찔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뮤지컬에는 무대가 깜깜해지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일단 무대에는 올랐는데 그런 암전을 처음 겪어서 방향을 찾지 못해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무대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죠. 야맹증까지 있어서 소품으로 침대가 나오면 그 위에 몰래 타고 들어간답니다."
지금은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뮤지컬이 딸에게 주는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딸이 커서 볼 수 있도록 7~8년 후에도 하고 싶다"고 열의를 불태웠다.
지난 7일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프레스콜에서 공연하는 박기영. /손진영기자 son@
# 히트곡 '시작', '응사' 방송타며 화제
복귀 시점에 뮤지컬뿐 아니라 모든 일이 순조롭다. 히트곡 '시작'이 최근 뜨거운 화제몰이를 하며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94'에 주인공 나정 역을 맡은 고아라의 리메이크로 삽입됐다. 이 일로 '시작'이 음원차트에 재진입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실은 처음엔 제 노래가 드라마에 삽입된 지조차 몰랐어요. 남편이 드라마를 보다가 알려주고, 팬들이 이야기해줘서 알게 됐죠. 그저 감사할 뿐이예요. 고아라씨에게도 고맙고요. 뮤지컬도 그렇고 이번 OST도 그렇고 일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좋은 기회가 온 걸 보니 우주의 기운에 제가 오고 있나봐요. 하하하."
지난달 말에는 오랜 만에 신곡 '아파도 잠시더라'를 발매했다. 레인보우브릿지에이전시의 음원 프로젝인 '더 아티스트 다이어리 프로젝트' 여섯번째 보컬리스트 자격으로 참여해 결혼과 출산 후 더욱 풍부해진 가창력을 뽐냈다. 추후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 곡을 더 발표할 예정이다.
이별 후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이 무뎌진 여자의 마음을 그린 가사에 대해 그는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 가사처럼 아무리 힘든 일도 다 흘러가더라"면서 경험담을 공개했다.
"20대 때 3~4년간 공백기를 가진 적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앨범을 내주지 않아 힘들었죠. 집의 가장이었는데 집도 차도 다 팔고 돈이 없었어요. 결국 소송까지 하게 됐는데 그 때 변호를 맡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죠. 힘든 일들이 나중엔 오히려 내게 큰 복이 됐어요. 그리고 그 때를 계기로 겸손함을 배우게 됐고, 아티스트로서도 한단계 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최근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스페니시 기타리스트 이준호와 베이시스트 박영식이 참여한 어쿠스틱 블랑이다. 4월 스페이스바움에서 어쿠스틱 블랑이라는 이름으로 첫 공연도 연다.
"언제부턴가 혼자 음악하는 게 외로워져서 팀을 만들었어요. 조금 더 사람 냄새나는 음악을 하면서 LP 등의 고품질 음반을 내고 싶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을 살리는 음악을 해보고 싶어졌답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