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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김용화 대표 "북에서 남한으로 오기까지…나는 행복한 사람"(인터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대표. /손진영기자 son@



'탈북인들의 아버지'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대표

탈북자지원단체 '탈북난민인권연합'은 탈북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고, 중국에서도 탈북자들이 신변을 보호하고 쉴 수 있는 피난처 4곳을 운영 중이다. 이 단체를 통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의 수는 무려 7000여 명에 달한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탈북인들의 아버지' 김용화(61) 대표를 만났다.

◆ 18년간 목숨 건 탈출기

1988년 북한에서 열차 7대가 전복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함흥 철도국 지도원으로 일했던 김 대표는 동료들이 공개 처형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탈북했다. "자식들 앞에서 초라하게 총살 당하기 싫었어요"라며 울먹이던 그는 7년 동안 중국 각지를 떠돌다 1995년 베트남에서 망명신청을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목숨을 담보한 그의 탈출기는 10년 넘게 이어졌다.

"베트남 유치장에서 북송을 기다릴 때 자살하기로 마음먹었죠. 감정이 폭발해 유치장 간부를 폭행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어요. 2년 동안 재판을 받느라 북송이 연기된거죠."

재판 도중 느슨한 틈을 타 라오스로 탈출했고, 한국인 신혼부부의 도움으로 쪽배를 마련해 빵 6조각과 나침판, 방수비닐만 들고 18일동안 노를 저어 한국의 안면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한국은 또 다시 그를 거부했다.

"나를 죄인 취급하고 의심하는 한국이 싫었어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수용소 생활을 하다 일본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았죠." 북한을 탈출한지 18년 만인 2006년에서야 그는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었다.

김용화 대표는 "탈북자들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 수 있게 힘을 주셨으면 좋겠다"며 탈북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 김수환 추기경 만나 인생전환

한국에서의 삶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후로 180도 변했다. "분단의 비극 때문이니 분노를 버리세요.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예요"라는 추기경의 말은 그의 가슴을 적셨고,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자들을 위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치기로 결심했다.

김 대표는 탈북 도중 잡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구출부터 한다. 북송을 막아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버리거나 기부받은 옷들은 탈북자들의 목숨을 구하는 중요한 도구다. 중국 사람들은 옷차림만으로 탈북자들을 쉽게 알아채기 때문이다. 탈북자를 상대로 한 사기사건도 빈번하다. 그때마다 김 대표는 사비까지 털어가며 직접 나선다.

"탈북자들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 수 있게 힘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장 큰 문제는 취업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러 기업체에서 탈북자 채용이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이들에게 앞날의 희망을 전해주세요."

10여 년동안 탈북자 7000여 명을 구출했지만 자신의 가족은 단 1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그는 "중국에서 방황하는 탈북자들을 외면하지 말고 국내 탈북자들에게도 선입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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