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 남자가 사랑에 눈 뜬 순간, 그의 삶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22일 개봉하는 황정민·한혜진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는 밑바닥 인생을 살던 한 남자가 평범한 삶을 사는 한 여자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군산 뒷골목에서 일수꾼 노릇을 하는 한태일(황정민)은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전형적인 '양아치'다. 사채를 빌려 쓴 채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병수발하는 주호정(한혜진)은 아버지의 빚을 갚지 못해 결국 태일의 사람들에 의해 무시무시한 각서를 쓰게 된다.
이를 지켜본 태일은 호정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설픈 방법으로 호정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호정은 태일이 무섭고 탐탁지 않다. 심지어 태일의 수줍은 마음을 "지금 협박하는 거냐"며 밀어 낸다. 그러다 호정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남자가 사랑할 때'는 앞으로의 전개가 예상되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다. 평생 사랑해본 적 없는 하류 인생 남자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불쌍한 여자. 불우한 인생을 사는 두 사람 앞에 장미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다. 최루성 멜로 영화의 특징을 대부분 답습하고 있지만, 너무 뻔한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한 감독의 노력이 곳곳에 묻어난다.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클로즈업 샷이 자주 등장하다가도 때론 풀샷으로 한 발짝 물러나 역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오해로 인해 이별한 태일과 호정이 재회하면서 격한 포옹신 대신 서로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 채 멀찍이 서서 눈물만 흘리는 장면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또 곽도원과 박성웅 등 조연과 카메오의 맛깔 나는 연기는 영화를 뻔한 신파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하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코믹 요소는 감정선을 끊기게 만들며 영화의 흐름을 방해한다. '신세계' 조감독 출신인 한동욱 감독이 황정민과 박성웅을 다시 한 화면에 담아내 숨은 재미를 선사하지만 극 전반에 있어서는 불필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남자가 사랑할 때'가 특별한 이유는 '너는 내 운명' 이후 오랜만에 황정민의 눈물 나는 멜로 연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내 운명'이 개봉한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황정민은 순박한 농촌 총각과 정반대인 뒷골목 양아치를 연기하며 색다른 멜로 연기를 선보인다.
태일은 호정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면서도 뒤에 욕설을 붙인다. 여자에게 욕을 내뱉어도 비호감이 되지 않는 이유는 태일이라는 캐릭터를 황정민이 '무섭지만 귀여운' 양아치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순정마초로 변신한 황정민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또 새롭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