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건축물인 중국의 만리장성은 기원전 3세기경 진시황이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하기 시작했다. 수·당·명을 거치면서 전체길이 6400km라는 어머 어마한 장성으로 완성됐다. 그런데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만리장성은 정작 외적의 침입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특히 만리장성 증축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명나라의 경우 결국 만리장성 때문에 멸망이 앞당겨지기도 했다. 만리장성 북쪽 산해관을 지키던 장수 오삼계가 투항하며 성문을 열어줘 청나라 군대의 베이징 침탈을 도왔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IT업계에 다소 '불편한' 뉴스가 전해졌다. 한때 60%대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마이크로소프트(MS) 웹브라우저인 '인터넷익스플로러(IE)'의 국내 점유율이 80%를 재 돌파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 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가 발표한 전 세계 웹 브라우저 조사에서 IE가 27.3%의 점유율로 크롬(41.9%)에 크게 뒤진 것을 감안할 때 기현상이다.
하지만 국내 IT전문가들은 IE 점유율 급상승이 전 세계의 IT 흐름에서 고립돼 점점 '갈라파고스화' 되고 있는 국내 IT 현실을 감안할 때 전혀 놀랍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국내 100대 민간사이트를 대상으로 점검한 결과, 75%가 IE의 보조 프로그램 '액티브X'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액티브X를 설치하지 않고는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비밀번호를 바꾸거나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받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번 IE 점유율 상승도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국민카드, 롯데카드, NH농협카드 등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이 급증한데다 연말정산 기간까지 겹쳤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액티브X의 보안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국내 금융계와 방송사에 휘몰아친 해킹사고도 보안 액티브X 응용프로그램 때문에 발생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금융·공공기관들은 이미 검증된 방식이라며 액티브X의 사용을 강행하고 있다. 액티브X를 포기할 경우의 '매몰비용'을 거론하는 주장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암호화인증통신(SSL), 1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 문자메시지(SMS) 인증, 스마트폰 보안 응용프로그램 활용 등을 통해 '액티브X' 사용을 피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리장성이 무너지는 것이 아까워 많은 국력을 퍼부었다가 멸망을 자초한 명나라처럼 IE·액티브X라는 '만리장성'만 믿고 있다 'IT강국'에서 '해커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는 대한민국 IT의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