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10여년 만에 80조원을 웃도는 규모로 성장하면서 퇴직연금 시장 안착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개별 근로자는 기업이 운용을 대부분 전담하는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 변화에 둔감하기 쉽지만, 은퇴 후 주머니에 들어오는 노후자금 액수가 시장의 구조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예탁원은 이달 말 퇴직연금 전담부서를 별도로 꾸려 퇴직연금 인프라 구축에 나설 예정이다.
퇴직연금 사업자간 정보를 표준·자동화한 중앙집중 시스템인 '펜션 클리어(Pension Clear·가칭)' 도입이 추진된다. 예탁원 관계자는 "늦어도 내년까지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도입된 퇴직연금 제도는 2007년 2조7000억원에서 2009년 14조원으로 급증하고서 2011년 49조9000억원, 2013년 84조3000억원 규모로 가파른 증가세를 거듭 중이다.
시장에서는 2015년 100조원, 2020년 200조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기업들은 펜션 클리어 도입으로 각종 업무 처리 절차가 간소해지면서 운용비 절감 효과를 볼 전망이다. 펜션 클리어가 벤치마킹하는 호주 '슈퍼스트림(SuperStream)' 제도는 2010년 당시 호주 정부 주도로 도입되면서 연간 8300억원의 비용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탁원 관계자는 "펜션 클리어는 무엇보다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 시장이 추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라며 "시중 펀드시장을 지원하는 통합 인프라인 예탁원의 '펀드넷' 네트워크를 퇴직연금까지 확대 적용하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인프라 확충으로 퇴직연금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저조한 수준에 머무르는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도 향상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호주의 경우 슈퍼스트림 도입 후 퇴직연금 자산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주식시장이 활성화되고 자산가치가 오르는 동시에 은퇴자의 소비 수준도 나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기업이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이 은행·보험 등 안정적인 금융상품 위주로 쏠림현상을 보이면서 평균 4%대의 저조한 수익률을 머무는 것도 한 원인이 됐다.
기업들은 투자 손익 책임을 지는 DB형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원리금보장 위주로 보수적인 투자를 한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퇴직연금에서 DB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며 근로자가 투자주체로 알아서 자산을 굴리는 DC형은 20%에 불과했다.
물론 노후자금을 다루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펀드 등 사적 영역에서도 안정적 투자 성향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익률 측면에서는 투자성향에 따라 운용성과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므로 보다 공격적인 투자 필요성이 제기됐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으로 설정액 10억원 이상 퇴직연금 펀드 191개 가운데 주식형펀드(혼합형 포함)는 28개로 약 15%에 불과했고 80% 이상이 채권형이었다.
반면 운용성과는 최근 1년간 전체 평균 수익률이 1.7%로 2%대의 예금 금리도 밑돈 반면, 주식형 일부는 10% 안팎으로 상위권을 휩쓸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근로자의 수권 측면에서 기업들의 DB형 운용 포트폴리오에서 안정형 상품에 대한 투자 의존도를 낮추고 펀드 등 실적배당형 비중을 늘려 수익률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