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살아계셨네요. 이렇게 얼굴을 보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박양곤(52)씨가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설 계기 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 형 양수(58)씨와 눈물의 만남을 가졌다. 양수씨는 1972년 12월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납북됐던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62호 선원 25명 중 한 명으로, 생사조차 몰라 애태웠던 형을 41년 만에 마주한 양곤씨는 기쁨과 설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살아줘서 고맙다고 되뇌었다.
당시 열여섯살이던 양수씨는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배를 탔다가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박 씨의 부모는 빼앗긴 아들과 다시 만날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지병과 노환으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양곤 씨는 형에게 남쪽 소식을 생생히 전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형의 묘소 사진, 가족 사진, 고향마을 풍경 사진을 챙겼고 내복 등 의류와 생활필수품을 선물했다. 양곤 씨는 이날 형수 리순녀(53)씨도 처음으로 만났다.
최선득(71)씨는 1974년 2월15일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납북된 동생 영철(61)씨와 상봉했다. 당시 스물한 살이던 영철씨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외양 어선을 탔다.
정부에 의해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북한의 최종석(93)씨와 최흥식(87)씨도 이번 상봉대상에 포함됐으나 모두 사망해 각각 남쪽의 딸 최남순(65)씨와 아들 최병관(68)씨가 북쪽의 이복형제와 만나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전해들었다.
전쟁통에 가족과 헤어진 김영환(90) 할아버지는 북녘에 두고 온 아내 김명옥(87) 씨와 아들 대성(65) 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에서 배우자를 만난 것은 김 할아버지가 유일했다.
김 할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을 피해 혼자 남쪽으로 잠시 내려와 있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당시 아들 대성 씨는 5살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이후 남쪽에서 결혼해 4남1녀를 뒀다.
60대 노인이 된 아들을 마주한 김 할아버지는 밀려드는 회한에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상봉에 동행한 아들 세진(57)씨는 "아버지는 북쪽 가족들에게 젊을 때 그렇게 헤어졌다는 미안함을 안고 살았다"며 "가족들을 만나면 보고싶고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남측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김성윤(96) 할머니는 여동생 석려(81)씨를 만났고, 감기 증세로 거동이 불편해 응급차를 타고 금강산까지 이동한 김섬경(91) 할아버지는 딸 춘순(68)씨, 아들 진천(65)씨와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3년 4개월 만에 진행된 이날 상봉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12명이 부부·자식을, 47명이 형제·자매를, 23명이 3촌 이상 친지를 각각 만났다.
남측 상봉단은 2시간에 걸친 단체 상봉에 이어 이날 저녁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해 만남의 기쁨을 이어간 뒤 첫날 행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