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뱅앤올룹슨 매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덴마크에서 건너온 이 브랜드는 스피커 한대가 100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싼 가격표로도 유명하다.
게스트 라운지에서 판매 중인 TV를 봤는데 투박한 외관에 깜짝 놀랐다. 세계 TV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에서 만든 TV는 날씬하고 샤프한 느낌인 반면 뱅앤올룹슨의 TV는 네모 반듯하면서 약간 비만인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본다. 이 제품은 '베오비전 11'으로 47인치 기준 1590만원이다. 삼성·LG의 '미스코리아' 뺨치는 몸매를 지닌 최신형 디지털 TV는 비싸도 200만원 안팎이다.
즉 최대 8배 가격차가 나는 이 럭셔리한 제품이 '왜 이토록 뚱뚱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아무리 잊힐만 하면 부는 게 '복고' 바람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무겁고 두툼한 게 혐오의 대상이 된 지는 오래 전 일이다.
호기심을 품고 제품을 켠 뒤 화질을 살펴봤다. 일본 파나소닉의 패널을 장착한 이 제품의 화질은 국내 기업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해외에서 물건을 가져와 터무니 없는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의문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바로 '소리'였다. 구하기 어려운 영화표를 얻어 맨 앞자리에서 스크린을 우러러보며 작품을 관람할 때 접했던 그 사운드 말이다.
가슴팍을 찌르는 듯한 저음의 사운드, 아침이슬이 호수 표면에 떨어질 때 나는 청아한 고음의 소리를 이 TV는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일반 TV에 비해 스피커 기능이 매우 뛰어나다. 6개의 스피커 수는 물론 출력 역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크다.
"소비자를 감동시키기 위한 충분한 사운드를 전달하려면 일정 수준의 스피커 스펙이 충족돼야 한다. 결국 스피커 성능을 위해 부득이하게 제품 두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는 간략하면서도 명확한 설명과 함께 베오비전 11의 두께(6cm)가 삼성·LG 제품의 6배 수준이라는 추가 정보도 건네줬다. 한마디로 TV의 본질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인데 보는 것에 치중하느라 듣기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내 대기업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TV는 누구나 볼 수 있고 가질 수 있어야 하는 사실상의 생필품 아니냐?"
맞는 말이다. 1500만원 짜리 TV와 200만원짜리 TV는 만날 수 있는 주인이 다르다. 그렇다면 제품의 본질은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인데….
볼때마다 바뀌는 것을 본질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님 매번 달라지는 게 진정한 본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