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하고, 안일한 어른들이 너희들을 사지로 몰아 넣었구나. 어른이어서 정말 부끄럽다."
이 나라의 시스템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기성세대들의 무사안일이 한창 꿈을 키워나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짓밟아 버렸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전 국민이 깊은 반성과 함께 큰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일로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시계는 16일 오전에 멈춰버렸다.
차가운 바다 속에 갇힌 실종자들을 언제 구할 수 있다는 기약도 없이 바다 위를 맴도는 구조대의 모습만 나오는 똑같은 뉴스를 보는 시민의 입에서는 속절없이 한숨만 나온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 무력한 시스템을 아이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객선 회사는 화물 과적과 부적절한 구조 변경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 극대화를 추구했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 다수는 긴박한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 먼저 탈출했다. 정부는 우왕좌왕 실종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언론은 세월호 사고 이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 경쟁을 하고 있다. 비정한 유언비어마저 나돌아 실종자 가족의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 2월 완성 재난대응체제 구멍
현 정부의 재난대응체계의 설계도격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지난해 대수술을 거쳐 지난 2월 7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의 핵심은 안행부에 범정부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하고, 사회재난의 총괄기능을 안행부에 맡기는 것이다.
새 법 이전에는 대형 재난이 터졌을 때 방재청이 인적재난의 총괄기능을 담당했다. 방재 관련단체와 전문가들은 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안행부로 사회재난 총괄기능을 이전하면서 방재청의 전문인력은 흡수하지 않는 등 준비가 불충분하다며 개정을 반대했다.
이런 지적은 새 기본법 시행 후 약 두 달 만에 터진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사고접수 후 한 시간 가까이 지나 꾸려진 중대본은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모으는 역할 밖에 하지 못했고, 그나마도 부정확하고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여 혼란을 초래하고 국민의 분노를 샀다. 중대본이 현장을 책임진 해양경찰청의 역량을 보강, 신속하고 효과적인 초동대응을 유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 해양경찰청 초동대응 안일
세월호 침몰사고의 1차 대응 기관은 해양경찰청이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의 초동대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선박이 급속도로 빠르게 침몰하고 있는데도 해경은 선박에 접근하고 나서 해상구조에 집중했다. 선체 대부분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고 30분 가량이 지난 뒤인 16일 오전 11시 24분쯤에야 잠수부가 최초로 투입됐으나 그 인원도 20명에 그쳤다.
생존에 필요한 사고 초기의 금쪽 같은 시간인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해경은 18일에야 잠수부를 500여명으로 늘리고 민간 잠수방식을 시도했다. 선체의 침몰 속도를 고려해 초기부터 잠수 준비를 서둘렀다면 초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 부실한 운항관리자 제도
부실한 선원 교육이나 허술한 출항 전 선박 점검도 대형사고를 부추겼다.
선원 교육과 출항 전 선박점검은 여객선사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한국해운조합에 위임돼 있다. 해운조합은 선사들의 이익단체다. 이익단체가 선박의 안전운항에 직결된 요소인 출항전 점검업무를 담당하다보니 안전운항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지고 이번 사고 같은 대형 참사를 낳은 것이다.
운항관리자는 내항 여객선사·안전관리담당자는 물론 선원에 대한 안전관리교육을 해야 하고 선장이 제출한 출항 전 점검보고서를 확인해야 한다. 또 여객선의 승선 정원 초과 여부, 화물의 적재한도 초과 여부를 확인하고 그 밖에 운항질서 유지 업무도 담당해야 한다.
구명기구·소화설비·해도와 그 밖의 항해용구가 완비돼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나 선장이 선내에서 비상훈련을 실시했는지 확인하는 일도 운항관리자의 임무다. 이런 사항들은 모조리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허점'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이란 점에서 결과적으로 부실한 운항관리자 제도가 이번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심리 전문가들은 전 국민이 분노와 함께 죄책감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해리 충남 나사렛대 상담센터의 교수는 "국민의 슬픔은 당연하다"며 "기성세대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스스로 각성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