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비채
다양한 장르와 남다른 스토리텔링으로 미스터리 장르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 나왔다. 해마다 평균 세 편 이상의 작품을 탈고할 정도로 다작을 하는 작가지만 유독 이번 작품만큼은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 작가는 '노란 나팔꽃'이라는 키워드만 남기고 전면적으로 소설을 재구성했다. 긴 세월 공을 들인 작품인만큼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번 작품은 에도시대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볼 수 없는 노란 나팔꽃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첫머리는 연관성을 찾기 힘든 두 개의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나팔꽃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 소녀에게 반한 중학생 소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은퇴 후 조용히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이 누군가에게 살해되는데 노인의 사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손녀딸 리노는 사건현장에서 노란 꽃을 피운 화분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좇기 시작한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하나로 얽히는 구조는 최근 미스테리 소설의 경향이라고 할 정도로 자주 보이지만 바로 여기에서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다.
타고난 스토리텔러라는 말에 걸맞게 작가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쫓는 리노의 이야기와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는 소타의 이야기를 정교하게 직조해낸다.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던 노란 나팔꽃이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사건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가져야 할 책무와 도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노란 나팔꽃을 둘러싼 두 가문의 행보와 소타의 전공인 원자력 공학에 빗댄 내용으로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사회에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파문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일본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인간으로서의 책임에 대해 뚜렷한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