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데뷔한 지 25년이나 됐어요?"
8세부터 연기 늘 즐겁다면 '거짓말'…"그래도 운명같아"
동그란 얼굴에 큰 눈 도톰한 입술. 아직도 앳된 소녀같은 배우 김민정(33)이 어느덧 데뷔 25년차 배우가 됐다. 아역배우들이 흔히 거치는 큰 방황의 시기 없이 차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30대에 들어선 현재를 '재구성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tvN '갑동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오마리아를 연기한 김민정/CJ E&M
◆ 갑동이 그리고 오마리아
지난 21일 tvN '갑동이'가 막을 내렸다. 김민정은 극중 살인마 갑동이로 인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입고 이중적 자아를 갖게 된 치료 감호소의 정신과 수련의 오마리아를 연기했다.
"끝나서 정말 시원해요. 마지막 회 촬영 들어갈 때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내가 잘 했는가. 최고는 아녔어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서 후회는 없어요."
스릴러에서 흔히 여자 주인공은 민폐를 끼치거나 캐릭터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중성을 지닌 오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에 대한 질문에 그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쉬운 게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영상에 나와서 제 목소리와 눈빛으로 제 생각을 표현할 때와 인터뷰해서 글로만 나갈 때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래서 좀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아요."
tvN '갑동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오마리아를 연기한 김민정/CJ E&M
데뷔 25년차 베테랑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마리아의 이중적인 모습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썼다. 가발도 쓰고 진한 스모키 눈화장을 하는 모습이 시청자에게 설명이 돼야 하는데 혹시 부족할까봐, 마리아가 가진 이중성이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그런 부분을 줄여 나가는 게 내 숙제였다. 하지만 '갑동이'에 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을 다 설명하기엔 여러모로 어려웠다. 태오(이준)를 찾아갈 때 왜 마리아가 가발을 쓰고 가는지 내가 봐도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시청자가 '마리아가 왜 저러는지'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 김민정의 재구성
오마리아는 12살 때 '갑동이'에게 친구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나도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마리아의 이중성을 이해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큰 스캔들이나 파격적인 행보 없이 순탄하게 배우 생활을 이어온 그에게도 트라우마는 있었다.
"자아를 형성하기 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 지를 너무 신경 써서 바닥만 보고 다녔어요. 학창시절엔 제가 없었어요. 혹시나 나쁜 소리라도 들을까 온갖 규칙은 다 지켰죠. 20대 초반까진 제가 바른 사람이라서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이유만은 아녔어요. 힘든 시기를 거쳐 지금은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과정에 들어섰어요."
그의 트라우마는 아역배우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연기생활에 후회는 없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을 하게 된 건 운명이에요. 아역배우들을 보면 어머니가 원해서 온 경우가 99%는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절 배우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딱히 없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열 살 때 혼자 불 꺼진 세트장에서 30분 전부터 감정을 잡았어요. 누가 날 억지로 이끈 것도 아닌데 말이죠. 늘 즐거웠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힘들 때도, 관두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운명 같아요."
'연기는 내 운명'이라고 말하는 그는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안 순간 멘붕(충격)에 빠졌고, 방황까진 아니어도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있었죠. 연기 외적인 요인들 때문에 참 힘들었어요. 당시엔 남 탓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모든 일들이 다 제 안에서 일어난 것이었죠. 덕분에 좀 편해졌어요. 연기는 제가 사랑하는 일인 건 분명해요. 다음엔 밝은 캐릭터로 인사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