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여직원' 로코 공식
신데렐라 스토리에 한국 사회 현실 녹여내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하는 흔한 설정 중 하나가 신데렐라 스토리다.
'왕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같은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여자 주인공이 남자주인공에 비해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과거 동화 속 신데렐라가 계모의 구박을 받는 재투성이 아가씨였다면 2014년 한국 드라마 속 신데렐라는 비정규직 평범녀다.
tvN 월화드라마 '고교처세왕'은 고교 아이스하키부 선수 이민석(서인국)이 형 대신 위장 취업한 기업에서 비정규직 여사원 정수영(이하나)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정수영은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빵빵한 스펙'이 없어 2년째 계약직 꼬리를 떼지 못한 채 적은 월급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아가씨다.
그런 정수영이 짝사랑하는 사람은 프로젝트 본부장 유진우(이수혁)로 오를 수 없는 나무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민석이 정수영을 좋아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유진우는 자신의 라이벌인 이민석이 정수영을 좋아한단 사실을 알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잘난 두 남자가 평범한 한 여자를 두고 대립하는 삼각관계는 로맨스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설정이다.
장혁과 장나라의 재회로 드라마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MBC 새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드라마는 이름도 외모도 학벌도 평범한 김미영(장나라)이 마카오 여행에서 만난 재벌 3세 이건(장혁)과 실수로 보낸 하룻밤으로 임신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애 경험이 전무한 모태솔로 김미영이 외모부터 재력까지 모두 갖추고 배려심까지 깊은 완벽남 이건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코드로 현실에선 볼 수 없는 판타지에 가깝다. 또 정수영과 김미영은 촌스러운 패션과 돋보기 같은 안경을 쓰는 점까지 흡사하다. 이 역시 여자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변신이 필수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필요한 요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다. 영화 '노팅힐'도 남녀가 뒤바뀌었을 뿐 사회적 위치가 다른 두 사람이 역경을 딛고 사랑에 빠진다는 점은 같다"며 "계층이나 빈부 격차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를 그릴 때 과거엔 여자 주인공이 단순히 가난한 정도로만 그려졌다면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계약직 설정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엔 결혼이 엔딩이었지만 지금은 여성이 사랑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간다. 단순한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사회적 성공을 바라는 현대 여성의 욕구가 녹아든 것"이라며 "백마 탄 왕자님과의 로맨스는 주요 시청층인 젊은 여성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여주인공이 계약직이라는 설정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