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딛고 대세 배우 등극
"캐릭터 그 자체로 기억되고 싶다…다양한 색깔 내는 배우가 목표"
배우 오정세(37)는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2012년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오정세를 본 관객 대부분이 그를 낯설어했다. 하지만 주인공의 '찌질미'에 반한 관객들은 한류스타 이승재를 연기한 무명배우 오정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가 생각보다 많은 작품에 등장했단 사실을 알고 놀라워했다.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왔지만 사람들은 엔딩크레디트 속 그의 이름 세 글자를 보기 전 까지 오정세임을 알아채지 못한다. 배우로서 속상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는 오히려 "못 알아볼 수록 좋다"고 말한다.
◆ 연기할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알아보기 힘들까.
나라는 사람보다 캐릭터 그 자체로 기억되고 싶다. '오정세가 연기를 한다'가 아니라 매 작품마다 백지 상태가 돼서 작품 자체에 녹아들어 연기하고 싶다. 나중에 관객들이 '그게 오정세였어? 연기 잘 하네' 이게 내 목표다. 연극 '이발사 박봉구'로 처음 무대에 올랐는데 저랑 몇 명만 신인이었고 다 쟁쟁한 선배들이 출연하는 작품이었다. 그 때 목표는 관객들이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쟤만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올까봐 두려웠다. 그냥 선배들 틈에서 자연스럽게 묻힐 정도로 나쁜 의미로 튀지 않게 연기하려했다.
◆ 그 목표는 성공한 것 같다.
성공했다. 막연하게 연기하고 싶은 생각에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막이 내려오 데 느닷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바닥이 다 젖도록 울었다. 20여 년을 살았는데 그 날 행복이란 단어를 처음 알았다. 몸으로 행복이란 걸 처음 느꼈고 남들 앞에 서는 일이 두려웠지만 계속 하고 싶더라.
◆ 계속 잘 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하이힐' '개과천선' '레드카펫' '아홉수 소년' 등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요즘 들어서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예전에도 많이 했다. 사람들이 몰라봐서 그렇지(웃음). 2006년엔 열 두 작품이나 했다. 역할의 크기가 작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6개월 동안 연극까지 했으니 무척 바빴다. 연극·단편영화·상업영화·드라마 등 가리지 않고 일했고 작품이 없어도 오디션 보러 다니거나 준비하는 과정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요즘엔 또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서 더 많이 노출되니까 전보다 바빠 보이는 것 같다.
◆ 아무리 그래도 무명시절엔 많이 힘들지 않았나.
작품이 없다고 스트레스 받진 않는다. 배우 1·2년 하고 관둘 게 아니니까 멀리 봤다. 물론 오디션 떨어지면 스트레스 받았지만. 경찰3 역할 하다가 언젠간 경찰1을 하겠지, 언젠간 이보다 더 큰 역할을 맡겠지 싶은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올해 단편영화 하나 했으면 내년엔 3개는 하겠지, 열심히 하면 지금보단 나아지겠지, 이런 막연한 자신감 말이다.
◆ 긍정적인 성격이다.
제일 큰 자산이다. 돈이 하나도 없어서 스무 정거장 걸어가는 것과 돈이 있는데도 걸어가는 건 물리적 거리는 같아도 고통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난 후자다. '난 잘났으니까' 이런 뉘앙스가 아니라 꾸준하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자신과 30년 후엔 지금보다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 그런 생각 쉽지 않은데 멋지다. 이건 칭찬이다.
칭찬 싫어한다. 아니 민망하다. 칭찬을 잘 하지도 못하고 받는 일도 어색하다. '연기 잘 한다'는 말을 들으면 '하핫! 원래 잘해요' 이럴까 싶다(웃음). 농담이다. 명색이 배우인데 시선이 집중되는 일이 민망하다. 제일 싫은 건 내 생일이다. 사람들이 '정세야 생일 축하해' 하면서 다가오면 어쩔 줄 모르겠다.
◆ 오정세로 기억되기 싫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음 연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제까지 만족했던 연기는 없다. 주위 반응이 좋아도 아쉬움이 많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하더라. 전 최선을 다해도 아쉬움이 늘 남는다. 다음 작품엔 일상적인 느낌의 캐릭터를 맡고 싶다. 사실 유쾌한 인물을 많이 해도 상관없지만 한 가지 색깔만 내는 배우가 될까봐 경계하고 있다. 어떤 장르의 작품에 임하든 전부 다 다른 색깔을 내는 배우고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