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한 수'에서 관록 넘치는 액션
연기·연출 모두 영화판에서 일어나는 일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최선 다해
20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 정우성(41)은 영화 '비트(1997)'로 반항과 청춘의 아이콘이 됐다. 남자들은 그를 우상시했으며 여자들은 그를 갈망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었다. 반항은 지워졌지만 관록이 더해졌고 그의 액션엔 깊이가 생겼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신의 한 수'에서 그는 복수를 위해 내기 바둑판에 뛰어드는 전직 프로 기사 태석 역을 맡아 한국형 액션 히어로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보여줬다.
◆ 내기 바둑이란 소재가 낯설다. 또 굳이 바둑이 아녔어도 됐을 것 같다.
'신의 한 수'는 철저한 액션 오락 영화다. 사실 바둑이 아닌 다른 내기로 바꿔도 괜찮을 수도 있지만 바둑이기 때문에 새롭다. 카드나 화투면 80년대 홍콩 느와르나 '타짜'를 흉내 낸 것 밖에 안 된다.
◆ 원래 바둑을 뒀나.
전혀.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내가 바둑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착수(바둑돌을 판에 올려놓는 동작)를 연습했다. 주머니에 돌을 넣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책상 위에 올리기 연습을 했다.
◆ 착수 칭찬은 받았나.
고수일수록 착수 동작이 유연하다고 들었다. 사실 나는 똑같이 뒀는데 바둑 봐주시는 기사님께서 '어, 그거 좋네' 이러셨다. 나는 속으로 '응? 아까랑 똑같이 놨는데. 이상하다' 이런 생각을 했다. 어렵다 착수(웃음).
◆ '신의 한 수'가 만화 같다는 평이 많다. 매 시퀀스마다 등장하는 바둑 용어와 새 캐릭터 때문에 '도장깨기' 만화같이 느껴졌다.
복수 대상을 한 명 씩 제거해 나가는 것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여러 요소들이 전부 의도된 것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함께 어우러지면서 '묘수'로 작용한 것 같다.
◆ 여성 관객들이 최진혁(선수 역)과의 '냉동 창고 신'을 좋아하더라.
진혁이가 액션신 경험이 별로 없어서인지 힘을 너무 많이 주더라. 그러면 자기 몸이 통제가 안 돼 사고가 나기 쉽다. 그래서 계속 '힘을 좀 빼라'고 얘기하면서 촬영했다. 그래도 (최진혁이) 타고난 운동신경이 좋아서 잘 찍었다. 이범수(살수 역)씨는 난이도 높은 긴 액션신을 잘 소화해내주셨다.
◆ '끝판왕' 살수와 맞붙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살수 패거리가 모두 검정색 수트를 입었는데 태석 혼자 흰색 수트를 입고 돌진한다. 마치 흑돌과 백돌의 싸움 같았다.
대부분 액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들은 현란하거나 밝은 색 옷을 입지 않는다. 액션이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한 수'는 만화 같기도 해서 의상 콘셉트 피팅 진행할 때 흰색 수트를 입겠다고 제안했다.
◆ 연출도 해서 그런지 배우 입장일 때도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것 같다. 연기도 하면서 언제 '킬러 앞에 노인'을 연출했나.
이번 작품 끝나자마자 바로. 연기를 하면 연출에 도움 된다. 외국엔 연출자 과정에 연기 수업도 있다. 감독이 배우 입장에 서면 어떤 감정에서 어떤 앵글을 잡아야 더 좋을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노리나. 연출자로서 상 욕심이 있을 것 같다.
그냥 흥행이나 했으면 좋겠다(웃음). 실은 신인 감독상을 타고 싶다.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값진 결과를 얻었으면 한다.
◆ 연기와 연출, 하나만 택할 수 있나.
배우가 내 본업이지만 영화는 커다란 하나의 판이라서 연출·제작이 전혀 다른 일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그저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난 연기와 연출, 모든 것을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배웠다. 행운이라 생각한다. 거친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스스로 공부했다. 물론 이론과 현장 경험을 다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단 아쉬움은 남지만 내 경우엔 현장이 더 나은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프로덕션 운영이 체계화·전문화되면서 제작사들의 통증이 커졌다. '나 죽는다, 자본가 입김이 너무 세다' 이런 말이 나오지만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프로덕션은 수많은 스태프를 책임지고 안정적인 수익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다. 예전에 배우들이 노동 시간 12시간 계약 체결하고 준수하라고 해서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근데 촬영 시간엔 배우만 일하는 게 아니다. 스태프들 노동 시간도 같이 정해지는 셈이다. 또 영화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가 지켜져야 노동착취가 덜해진다.
◆ 나중에 영화 관련 협회장 해도 되겠다.
그건 싫다(웃음). 연기해야 한다.
◆ 연출에 연기까지, 진짜 바쁠 것 같은데 언제 쉬나.
그냥 촬영 마치고 집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는 게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