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건을 직권조사할 수 있는 유일한 외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5년간 군 인권침해 진정사건 중 75%가량을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 처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각하 처리한 것 중 10%는 '군에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종결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을 접수한 뒤 현장조사를 하고도 군 검찰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각하 처리했다. 윤 일병의 진실을 밝힌 것은 인권위도, 군 당국도 아닌 제보자와 시민단체였다.
11일 인권위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09~2013년 접수된 군 인권침해 진정 1177건 중 인권위가 진정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긴급구제나 권고 등 구제조치를 한 것을 의미하는 '인용'이 된 사건은 75건(6.4%)에 불과했다.
조사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종결한 '각하'는 875건(74.3%)에 달했다. 조사 결과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판단된 '기각'은 213건(18.1%)이었다.
군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은 2009년 78건에서 지난해 165건으로 두배 이상 늘었지만 매년 인용률은 3~6%에 머물렀다. 이는 인권위가 군 사건을 대할 때 그 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군부대는 외부와 단절돼 진정 사실이 알려지면 군의 조직적인 회유나 압박에 의해 피해자들이 진정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각하 사유를 보면 '진정인이 취하한 경우'가 58%(507건)로 가장 많았다. '사건 발생 1년이 지나 진정이 접수된 경우'도 18.3%(160건)였다.
인권위는 육군 28사단에서 선임병들의 폭행으로 사망한 윤모 일병 측의 진정을 접수하고서도 "군 당국 수사로 해결됐다"며 각하했다가 뒤늦게 직권조사에 착수해 비난을 받고 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인권위가 군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