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캣우먼!
종종 지인들로부터 급전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금액과 빌려달라는 이유는 참 다양하더군요. 순진했을 때는 제가 쪼들려도 돈을 융통해줬고 또 어떨 때는 적당히 빠져나온 후 왠지 야박한 인간이 된 것 같기도 했어요. 돈을 못 돌려 받은 쪽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금액이 크지 않아 그냥 인생 배운 셈 치고 잊어 넘겼죠.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 온 고교시절 절친했던 친구가 사업하면서 급한 걸 막기 위해 돈 1000만원을 빌려 달라 합니다. 사실 그 돈 있긴 하지만 적은 돈도 아니고 왠지 갚을 능력도 없어 보입니다. 일단은 거절했는데 잘한 일인지 찜찜합니다. 제게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친구가 거절하면 서러울 것 같기도 하고요. (나 잘했나요?)
Hey 나 잘했나요?
안 빌려주는 게 맞습니다. 급한 걸 막기 위해 오랜 시간 연락 안 하던 옛날 친구한테까지 빌리려는 상태는 어디서도 공식적으로 빌려주지 않아서 이미 망하는 상태인 거죠. 그 상황에서 벗어나올 확률은 거의 없단 말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돈을 빌릴 때 여러 가지 버전이 있죠. '부모님이나 아이가 아프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난 산다'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다' 혹은 안 빌려주는 사람 쩨쩨하게 만드는 '단돈 몇십만원만 빌려주라'. 돈을 빌린 다음 그들은 연락을 끊고 제 날짜에 돈을 안 갚습니다.
문제는 돈을 빌려준다고 해도 마음이 개운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당신이 급전이 필요할 때 문득 '아 그 때 내가 빌려준 그 돈…'이라며 그 상대를 증오하게 될 뿐, 이러나저러나 망하는 길이니 빌려주지 않는 게 역시 좋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찜찜하면 상대가 빌려달라는 금액의 10분의 1만 그냥 주세요. 절대 '빌려주는' 게 아니라 '준다'라고 못 박으세요.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아닐 때 그 돈에 대해 잊는 게 훨씬 쉬워집니다. 이 금액이 부담스러우면 그냥 이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십시오. "미안하다. 지금 이 전화는 너한테 안 받은 걸로 하겠다." 의외로 상대는 순순히 물러설 겁니다.(캣우먼)
/임경선 칼럼니스트 askcatwom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