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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교황 방한] 프란치스코 교황, '청빈함의 대명사' 교황이 되기까지…일대기

프란치스코 교황./교황방한준비위원회 제공



지난해 3월 13일, 제266대 교황이 선출됐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남미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당시 예수회 소속인 새 교황이 예수회와 대립했던 프란치스코회를 만든 프란치스코 성인에서 즉위명을 따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보통 교황들은 역대 교황들의 즉위명을 계승하는데 '프란치스코'라는 명은 처음이었다.

교황은 당시 즉위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황에 선출됐다는 걸 안 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 생각났고, 이어 평화의 상징인 성인 프란치스코가 마음 속에 들어왔다. 성인 프란치스코의 삶과 같이 가톨릭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가난한 교회가 되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다녔던 것으로 유명하다. 청빈과 겸손, 헌신의 삶을 살았던 그를 후세는 '제2의 예수 그리스도'로 여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작은 것'을 택하며 즉위명에 걸맞은 청빈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도 그는 관행을 깨고 교황 관저가 아닌 낡은 게스트하우스 '성녀 마르타의 집'에 머물고 있다. 이곳은 1891년 바티칸 인근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당시 교황 레오 13세가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만든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을 피해 몰려든 망명자와 유대인들의 피신처로 쓰였다.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왔다. 지난해 12월 17일, 교황 즉위 후 맞은 첫 생일상에 동유럽 출신 노숙인 세 명을 초청해 함께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학사 학위를 받았으나 사제직을 택한 뒤 비야 데보토의 신학교에 들어간다.

1958년 3월 11일 그는 예수회의 수련소로 옮겨 칠레에서 인문학 과정을 마쳤다. 1963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산미겔 시에 있는 성 요셉 대신학교에서 철학사 학위를 받는다.

1969년 12월 13일, 사제품을 받게 되고 1970년부터 1971년까지 스페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3차 수련을 마친 후 1973년 4월 22일 종신 서원을 한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산미겔 철학 신학 대학의 학장으로 일하면서 산미겔 교구의 파트리아르카 산호세 본당의 주임 사제를 겸임했다. 그후 1986년 3월, 독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마쳤고 수도회 장상들은 그를 엘살바도르 대학교와 코르도바 대학교의 고해사제와 영성 지도자로 임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 5월 20일, 그를 아우카 명의 주교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한다. 그후 1992년 6월 27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교좌성당에서 안토니오 콰라시노 추기경·우발도 칼라브레시 교황 대사·메르세데스 루얀 교구의 에밀리오 오그네노비치 주교에게 주교품을 받게된다.

2001년 2월 21일,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추기경회의에서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한다. 2005년 11월 8일부터 2011년 11월 8일까지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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