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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교황 방한] 민족과 함께 해 온 한국 천주교



한국 천주교는 외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평신도의 탐구에 의해 시작된 태생적 특징이 있다. 또 수많은 순교자의 목숨을 건 순교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에 한국 천주교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자생적으로 태동한 한국에서의 천주교

17세기 초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이 한자로 저술한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조선에 들어오며서 '서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이 태어났다. 이는 실학사상을 토대로 서양 기술을 도입하는 실천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종교운동으로 이어졌다.

초기 신앙인들의 이런 활동으로 당시 조선 땅에는 성직자나 선교사 없이 신자 수가 5년 만에 4000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렇게 한국 천주교회는 자생적으로 태동했다. 평등과 제사 금지령 등으로 조정의 혹독한 탄압과 박해를 받게 됐지만 당시 신앙인들의 용기가 교회 공동체를 보호하면서 조선 땅에 천주교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세계 사랑의 손길을 받아

식민지 시대를 거쳐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교회는 물론 한국 민족 전체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모든 것을 잃고 깊은 좌절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 국민을 위해 세계교회가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세계 교회의 애덕의 실천은 한국 교회와 민족이 자신의 종교·사회적 생명력을 회복하는 밑거름이 됐다.

특히 세계 전역의 가톨릭교회에서 많은 사제와 수녀 선교사들이 파견됐으며 재정적으로도 미국 가톨릭구제회와 독일 미제레올, 오스트리아 부인회 등이 나눔의 은혜를 베풀었다.

이후 한국 교회는 단순 보조에서 자립형 개발 지원 방식으로 지원 형태를 변경해 갔으며 외국의 원조를 민족의 사회·경제·문화적 역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후에 원조를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역할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사회 복지 사목을 통한 지역사회의 복음화

천주교가 20세기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부문 중 하나는 '사회 복지'다.

소록도와 나자로 마을, 꽃동네로 대변되는 한국 교회의 '돌보는 사목'은 한국 근대화에 기여한 분야 순위에서 첫째를 차지할 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 198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면서 서울대교구가 '한마음한몸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나눔을 현대 세계에 육화시키고자 하는 기본 취지를 갖고 있었다. 이에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으며 이후 입양 결연 및 헌혈운동, 장기·조혈모세포 기증 등과 같은 생명나눔운동과 환경운동 등의 토대가 됐다.

◆민족의 운명에 동참한 교회

이와 함께 교회는 한국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며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고 있다.

1962년 전국위원회를 조직한 'JOC(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군부독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소외된 노동자 권익을 옹호하며 가톨릭 노동운동을 대중화했으며 1987년 인천교구 사제단의 호헌 철폐 및 민주 개선을 갈구하는 단식 돌입, 김수환 추기경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조작 발표 등은 민족의 운명과 함께한 한국 교회의 업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가톨릭농민회 창설로 시작된 농민운동, 모자보건법 폐지운동, 사형폐지 운동 등도 빠뜨릴 수 없으며 이런 활동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는 신뢰를 주는 교회로 사회적 위상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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