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 평화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사적인 방한 일정을 마치고 교황청으로 떠났다. 지난 14일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교황은 18일 오후 1시쯤 한국에서의 마지막 걸음을 뗐다. 총 이동거리 1000㎞에 달했던 교황의 행적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줬다.
◆비극을 위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땅을 밟는 그 순간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했다. 교황은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을 가장 먼저 위로했다. 한 손은 가족들에게 다른 한 손은 자신의 가슴에 올리며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집전할 때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리본은 이 때부터 방한 일정 내내 교황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었다. 공항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리본은 제자리를 지켰다.
세월호 대책위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은 미사 때 교황이 리본을 달고 나와 깜짝 놀랐다고 했지만 교황은 애초부터 이들을 위로할 뜻이 충분했다. 지난 17일 오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인 이호진 씨의 세례식을 마친 교황이 자필로 직접 서명한 편지에는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라고 적혀 있었다.
교황은 이 미사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를 국가적 대재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표현하며 희생자에게는 평화를, 이들을 돕는 이들에게는 격려를 기도했다.
16일, 90만 인파가 모인 서울광화문광장 시복미사에서 교황은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리한 곳에 멈췄다. 펜스 너머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부여잡은 교황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잠시 기도했다. 보는 이들의 눈시울 적시기에 충분했다.
◆다시 청년을 일깨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방한은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이 주목적이었다. 그동안 행적에서 청년들에게 각별함을 보여왔던 교황은 아시아 청년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희망과 용기를 얘기했다.
15일 당진의 솔뫼성지를 방문한 교황은 청년들에게 분열과 폭력, 편견을 거부하고 물질과 권력, 쾌락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여러분은 이러한 세상 속으로 나아가 어떠한 상황, 가장 절망적인 상황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청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어 "이것이 학교·직장·가정·지역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나눠야 할 메시지"라고 당부했다.
17일 서산 해미읍성을 찾은 교황은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했다. 이 자리에서도 청년들에게 세상에 대한 용기를 주문했다. 교황은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지녔으니 두려워말고 모든 측면에 신앙의 지혜를 불어넣으라"고 말했다. 이어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에게 연민과 자비, 사랑으로 답하라"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합과 용서를 이야기하다
교황은 17일 해미성지를 찾아 아시아 각국에서 온 추기경과 주교들을 만났다. 아시아지역 가톨릭의 수장들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강조했다. 교황은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의식하고 다른 이와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완전한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아시아 대륙의 몇몇 국가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주저 없이 대화를 추진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일정은 18일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얘기한 미사였다. 이 자리에는 맨 앞줄에 자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7명을 비롯해 새터민, 납북자 가족, 북한 출신의 사제·수녀·평신도 등이 초청됐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기관을 대표하는 10여명도 초대됐다.
이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교황은 '용서'를 당부하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죄 지은 형제들을 남김없이 용서하라"며 "한국인으로서 이제 의심·대립·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길" 희망했다.
교황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미사 전, 12명의 이웃종교지도자들을 만난 프란치시코 교황은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교황이 이 자리에서 꺼낸 말도 다름 아닌 화합이었다.
"삶이라는 것은 혼자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형제들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