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서비스 기업 SK C&C에는 독특한 직원이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14년째 사진을 찍고 있는 윤종현 홍보팀 과장이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20회 가량의 전시회를 하며 여러 권의 책도 냈다. 처음 웹 기획을 담당하는 부서에 일하다가, 사진을 잘 찍는다는 평가에 홍보팀에 '스카웃'이 됐고, 요즘엔 사람들에게 강의까지 한다.
"2001년 개인홈페이지가 유행하던 시절, '내가 찍은 사진'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 초기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작정 꽃이나 일출 등을 찍으러 다녔지만 실력이 잘 늘지 않았다. 장비 탓으로 생각하고 카메라를 여러 대 바꾸기도 했지만 변하는 게 없었다. 그러던 중 2004년 사진작가 김홍희 선생님을 만나 사사를 받은 것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윤 과장의 첫 포트폴리오는 지하철 촬영이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충정로까지, 3년간 출퇴근하면서 거의 매일 사진을 찍었다. 그는 당시를 가장 사진에 대해 열정적이었던 시절이라고 추억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작은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성추행범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고 구타를 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사회의 아이콘을 읽어낼 수 있게 됐고 동시에 두려움을 떨치는 법을 배웠다."
윤종현 과장의 지하철 포트폴리오 사진(위)과 둘째 딸을 출산하던 순간의 아내의 모습을 담은 사진.
◆주변 사람들의 삶을 담는 사진
직장을 다니며 사진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윤 과장의 경우 장비 마련을 위해 틈나는대로 주말을 이용해 행사나 공연 사진 등 의뢰 받은 프로젝트 일을 했다. 사진은 보통 주변사람들을 찍었다. 풍경을 찍기 위해 멀리 나가는 것보다 시간이 덜 들었고 그게 더 의미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누군가 삶의 한 순간에 잠시 끼어드는 일이다. 때문에 그 사람의 삶과 역사 속에 들어가 진정성을 갖고 이해할 때 좋은 사진이 나온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라. 집 앞 슈퍼마켓의 주인 내외, 구두수선집의 수선공 등 이웃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또 가족, 동료 등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지하철 포트폴리오를 찍던 시절처럼 열정적이고 '작품성' 있는 사진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찍은 최근의 작품들이 그에게는 무척 소중하다. 그는 벌써 아이들이 태어나던 때부터 9년째 가족들의 사진을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고 있다. 회사에서는 정년 퇴임을 하는 동료, 결혼을 앞둔 여자 직원의 결혼식 전날 사진 등을 찍어줬다. 홍보팀으로 옮기면서 소위 말하는 '작품 사진'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며 웃었다.
◆사진으로 마음을 전하다
윤 과장은 다음달 서울 역삼동 갤러리 이마주에서 열리는 'SalArtist(샐라티스트)' 전에 참여한다. 샐라티스트란 '샐러리맨'과 '아티스트'를 합친 말로 직장인 예술가를 뜻한다. 이 전시회는 2011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참여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람들의 삶에 밀착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싶다. 가족 사진은 앞으로도 꾸준히 찍을 것이다. 올해 개인적인 목표는 그 동안 감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홍희 선생님, 함께 사진을 공부했던 분들,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가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팽목항에도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