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로마제국의 세계 제패 이유와 생각을 밝히고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에 시사하는 점을 쓰시오'(현대차그룹)
'개화기 조선을 침략한 국가를 순서대로 나열한 것을 고르시오'(삼성그룹)
하반기 대기업 공채 시험의 화두는 단연 '역사'다. 주요 그룹사의 필기시험인 인적성 검사가 한창인 가운데 출제된 역사 문항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5일 취업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대졸 공채 필기시험을 진행한 현대자동차그룹은 역사 에세이 과목에서 '몽골과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와 생각, 이를 통한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과 지속성장 시사점을 서술하라'와 '신사임당은 당초 저평가된 인물이었는데 율곡 이이의 붕당 세력이 강해지면서 조선 최고 현모양처로 재평가됐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업적과 실력에 비해 저평가된 인물을 쓰고 재평가하라'에 대해 40분동안 700자씩 서술하란 문제를 냈다. 현대차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역사 에세이 문항을 필기시험에 도입했다.
현대차 인적성 시험을 두번째 치른다는 대학생 이모(27)씨는 "추론 문제보다 역사 에세이가 제일 어려웠다. 기존보다 문제 수준이 까다로워졌다"며 "나는 저평가된 인물로 정도전을 썼는데 다들 사극 주인공을 거론하더라. 평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유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역사 에세이는 지원자의 역사관과 인문학적 깊이를 측정해 그룹 인재상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열린 삼성그룹 필기시험에서 역사 문제는 전체 상식 문제의 20% 분량으로 상반기보다 비중이 증가했다. 문항은 사건 암기가 아닌 시대별 흐름에 중점을 두었으며 한국사와 인문학, 세계사까지 접목해 난이도가 올라갔다.
지난 4일 열린 LG그룹 필기시험의 '인문역량' 과목은 역사 10문제와 한자 10문제로 구성됐다. LG디스플레이에 지원한 최모(26)씨는 "역사 문제는 상식선에서 나왔지만 대충 공부한 상태에서 풀려면 힘들다"고 말했다.
CJ그룹과 SK그룹은 19일에 필기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두 회사 필기시험에도 역사 소양을 묻는 문제가 강화된다. CJ 측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오늘날 현대 이슈와 엮어 문제점까지 해결하는 종합적인 과정을 평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역사 시험은 호불호가 갈린다. 인문학 소양 평가는 의미있지만 역사 실력이 또 다른 취업 스펙이 되어 구직자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대기업의 역사 시험은 시행 초기이기 때문에 사교육 의존이 큰 효과가 없다. 학원 주입식 교육이 낳은 단순 지식이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역사 흐름에 대한 관점 정리가 중요하다. 아울러 역사관은 구직자의 가치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이 자사의 기업가치와 맞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라도 역사 시험 강화는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