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마왕' 가수 신해철이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 이상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27일 오후 8시 19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신해철은 지난 22일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 의료진은 심정지 원인을 찾기 위해 장 협착으로 수술을 받은 부위를 개복해 응급 수술을 하기도 했다.
이에 앞선 지난 17일 신해철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진료 차 분당 A병원에 내방했으나 대기 시간이 길어 가락동 S병원으로 이동해 각종 검사 후 장협착에 관한 수술을 진행했다. 이틀 뒤인 19일 퇴원했지만 20일 새벽 수술부위 통증과 미열 발생으로 S병원에 방문해 진료 후 퇴원했다. 이후 22일 새벽 복부 및 흉부 통증으로 S병원에 입원했으나 갑작스런 심정지가 발생했다. 심폐소생술 실시한 뒤 서울아산병원으로 후송된 신해철은 복강 내 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보컬로 데뷔한 신해철은 솔로와 밴드 넥스트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그대에게',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인형의 기사', '일상으로의 초대', '날아라 병아리', '해에게서 소년에게',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Here I Stand For You', '도시인',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Hope',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절망에 관하여',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등 셀 수도 없는 히트곡을 내며 한국 록과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었다.
끊임없이 음악적 변신과 사회성 짙은 가사로 의식 있는 뮤지션이라는 찬사도 받았던 그다. 1992년 록밴드 '넥스트'를 결성했다. 넥스트는 1997년 해체되기까지 총 4집을 발표하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로큰롤 음악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1997년 밴드 해체를 선언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프로듀싱을 공부했다. 그 즈음해서 '크롬',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며 전자 음악 사운드를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 2000년 들어서 그는 다시 넥스트와 솔로 뮤지션으로서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다.
MBC '100분 토론'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간통제 폐지를 찬성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2002년 대선 당시에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아울러 라디오 디제이 활동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로 팬으로부터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 6월 신해철은 오랜 공백을 깨고 솔로 6집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며 가요계 컴백을 알렸다. 이와 함께 '넥스트유나이티드'를 꾸려 공연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가요계 안팎의 동료와 선후배들은 신해철의 쾌유를 기원했지만 올 들어 가장 추웠던 이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며 모두를 울렸다. 신해철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28일 오전 10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