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학계, 금융전문가 등이 '통일대박'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19일 한국금융연구원은 이날 한국정책금융공사, KDB금융그룹과 함께 '한반도 통일과 금융' 컨퍼런스를 열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통일금융 역할과 정책과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통일 금융의 역할 및 정책과제'와 '통일 재원 조달방안 및 금융회사 역할' 이라는 두가지 주제로 다뤄졌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과 '통일 대박론'을 언급한 이후 금융권에서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기 위한 밑그림 작업에 착수한 셈이다.
◆ 재원조달에 549조원 소요..실질적-구체적 연구 필요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은 개회사에서 "남북은 내년 분단 70주년을 앞두고 있어 더 늦어지기 전에 통일을 이뤄야 하지만 준비없이 맞이하는 통일은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대비가 필요하며, 정책금융기관 역시 통일 관련 연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금융정책 과제를 발표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외생변수와 북한 금융 상황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부족해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며 "그럼에도 금융위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실향민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도 통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신 위원장은 "현재 1인당 1251달러 규모인 북한 국내총생산(GDP)이 20년 후 1만달러 수준으로 오르는 등 북한 개발을 위해선 약 5000억달러(한화 약 549조원)가 필요하다"며 "이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선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정책금융기관, 민간투자자금, 북한 자체 창출재원이 들어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증세에 의존할 경우 또다른 사회적 갈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금융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개발재원에 투입우선 순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신 위원장은 "현재의 중앙집중체제의 금융체계도 가격중심·시장체제로 전환하고, 직접금융보다 간접금융 육성에 정책역량을 집중하면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상업은행 제도를 도입하고 한국·외국계 상업은행의 북한 진출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또 "체제전환 방식과 속도는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지만 일반적으로 발전·이행·통합의 3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통일은 한국경제에 기회이지만 잘못 대응하면 비용이 클 수 있어 통일이 한국 경제에 최대의 선물이 될지는 준비와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정책금융기관에게 중점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국민들의 부담을 저하시킬 수 있는데 기여할 것"이라며 "개발 재원 투입 우선 순위에 대한 논의도 북한이 원하는 수요중심 발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윤 박사는 다만 "남한의 거시경제적 불안정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금융시스템 구축이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점에서는 동의하나 북한지역의 제도적 변화를 누가 이끌 것인지에 대한 실행방안 역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투자 개념으로 봐야..정부-기관 협업 필요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장형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발전-이행-통합 등 3가지 과제로 분류한 점은 진일보한 부분"이라며 "다만 북한의 국제 사회 편입과 이 경우 우리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해야할 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남북 통일 후 북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 수준으로 오르기 위해선 북한 지역에 대한 민간 금융사의 여신 잔액이 20년 후 200조원 수준에 달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은 "북한의 명목GDP는 지난해 기준 34조원 규모로 최근 3년간 성장률은 매년 1% 내외 수준에 불과하다"며 "북한 경제가 20년 뒤 1인당 GDP 1만달러로 발전하려면 연평균 11%의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진단했다.
대출, 필요 자기자본 및 손실흡수능력 규모. /금융연구원 제공
윤 원장은 "통일 초·중·후기 동안 국내 금융사는 각각 2조3000억원, 4조4000억원, 8조6000억원의 자기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며 "국내 금융사가 통일 시 북한 시장 진입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총자산수익률(ROA) 0.1%포인트 정도를 투자하고 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불가리아, 러시아 등 체제 전환국의 금융위기를 사례로 들며 "대출 공급 여력 유지를 위해서는 시장 진입 초기 11~27%에 이르는 손실흡수능력의 보유가 관건"이라고 꼽았다.
금융사들이 북한 지역에 진출할 때 필요한 손실흡수능력 규모로는 초·중·후기 각각 4조9000억원, 7조원, 4조1000억원이 예상됐다.
윤 원장은 "통일금융은 금융이라는 시스템 아래 최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투자의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일부 손실이 나더라도 비용처리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자본확충과 북한 관련 정보 축적, 관련 금융사와 연구기관의 협업, 국제 공조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원에 대한 정체성과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본부장은 "통일 비용에 대해선 복지와 다른 개념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며 "이행과 통합 단계별로 어떤 종류의 금융사가 들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호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개성공단 사례를 꼽으며 "정부가 한 축을 담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스크를 짊어지고 들어갈 민간 기관은 없다"며 "시장 참여 유인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