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이들과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고, 대만 사람을 만났을 때는 노자와 장자 이야기를 한다."
외장하드·미디어플레이어 업체 새로텍의 박상인 대표(63)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다. 6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물론 외국인까지 누구를 만나도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게 된 것은 독서와 영화 감상, 등산 등 다양한 취미를 통해 축적한 경험들 덕분이다.
그가 처음부터 취미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박 대표는 "수십년 동안 휴식의 개념 없이 일했고 쉬는 날에는 잠만 잤다"며 "그때는 다들 그렇게 일하던 시절"이라고 설명했다. 제품 개발과 국내·외 수출까지 진행하면서 다양한 국가들을 방문했지만 항상 업무만 보고 돌아왔다. 그는 "당시에는 '해외 여행'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인 만큼 출장을 가더라도 인근 지역을 둘러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10여년 전 처음 '여행'을 목적으로 터키를 찾았을 때 문득 '삶의 질'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 이전에도 출장을 목적으로 터키를 가본 경험은 있지만 여행은 완전히 다른 감흥이 있었다.
박 대표는 "휴양지를 찾기보다는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여행을 좋아한다"며 "이를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 그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과 영화를 본다"고 말했다. 시작은 유럽 여행을 위해 읽었던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였다. 최근에는 발칸 반도를 다녀왔는데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케도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밀코 만체브스키의 영화를 봤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화와 책을 많이 보게 됐다. 지하철을 탈 때도 시집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챙겨본다.
"특히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성장 중요해
최근 들어 사업과 경영에도 인문학을 접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사업은 사업이고 인문학은 인문학인데 이를 접목하라고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아무리 좋은 취지여도 인문학과 별개인 사업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텍의 직원들을 대하는 박 대표의 태도에서는 인문학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일과 휴식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박 대표는 직원들에게도 일과 휴식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자주는 아니더라도 등산, 영화 등을 함께 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고자 노력한다. 박 대표는 "나는 인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문화를 즐기는 것이 단순한 '즐거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는 고도의 경제적 성장을 이뤘지만 그만큼의 정신적인 성장도 중요하다"며 "자본주의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문화가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를 갖춰야 사회가 더 인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책과 영화, 공연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20, 3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박 대표는 "문화를 향유하는 연령층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내 또래들이 문화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으면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존경 받는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박 대표는 이제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NGO에 들어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활동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지금보다 더 많은 문화적인 활동을 하면서 즐기며 살고 싶다고 한다. 박 대표는 "인생의 목표는 책 3000권을 읽고 영화 3000편을 보는 것이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이들이 치열하게 살면서도 때로는 자신을 위한 휴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그리고 한국의 다른 노인들도 나처럼 즐겁게 살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