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인공, 신랑·신부임을 보여주는 것이 주례 의무"
충북의대 정형외과 김용민 교수가 PPT 주례를 하고 있다./김용민 교수 제공
최근 주례사 대신 양가 부모의 덕담을 듣거나 편지를 읽어주는 식의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는 신랑·신부들이 늘고 있다.
틀에 박힌 주례가 간혹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다른 이벤트로 채워 이색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색 주례사가 등장해 화제다. PPT 강의 형식으로 꾸민 것인데 이 주례사의 주인공은 충북의대 정형외과 김용민 교수(56)다.
김용민 교수는 PPT 강의 주례사는 한 신랑의 제안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저도 처음 주례를 보았을 때에는 일반적인 주례사를 했죠. 2006년 제자의 주례를 맡게 됐는데 신랑이 '교수님, PPT 강의가 재미있으니 결혼식 주례사도 그렇게 해보시죠' 라는 제의를 받고 처음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일단 하객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아지니까 예식 분위기가 산만해지지 않아서 좋고, 신랑·신부의 사진과 이야기로 풀어나가니 결혼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해주니까 당연히 좋지요."
지난 토요일 서울 논현동의 한 웨딩홀에서 열렸던 결혼식도 주례사의 시작과 함께 모든 하객들의 눈이 식장에 마련된 화면으로 고정됐다. 새로운 사진과 이야기를 담은 PPT 화면으로 인해 결혼 주례사 시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웅성거리는 잡담의 광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김 교수는 결혼식을 회상했다.
신랑 부모님의 30년 전 결혼식 사진과 신랑의 돌 사진을 담은 첫 화면에 이어 신랑이 태어나서 어느 학교를 졸업했지 등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학교 동창 하객들은 모처럼 모교의 이름을 결혼식장에 와서 듣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로웠을 것입니다. 신랑이 의대를 졸업하고 정형외과 수련과정을 겪는 과정과 국제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약상을 보여주는 사진에서는 하객들의 찬사가 쏟아졌지요."
이어 신부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시작으로 신부의 어린 시절 모습이 시대 순으로 등장했고 신부가 남자 동급생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사진에 대한 설명에서는 신부가 늘 인기의 정점에 있었다고 말하며 식장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신랑과 신부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두 사람이 사랑을 키워나가면서 서로 웃는 모습이 닮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PPT 슬라이드에서는 하객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소개 뒤에는 당부와 축복의 메시지가 이어졌는데 이 역시 특별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사진과 함께 풀어나갔다. 동화는 결혼으로 끝이 나지만 현실은 결혼이 단지 시작을 의미하는 것임을 그리고 결혼 후에는 두 사람만의 삶이 아닌 상대방의 가족, 친지 등 주위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야 함을 말하면서 영화 슈렉의 주인공에 빗대 설명했다. 주인공이 함께 있을 때의 행복한 모습에 이어 피오나 공주의 부모를 만난 슈렉의 당혹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는 많은 하객들이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신혼부부가 각자 살아오다가 하나의 가정을 만드는 과정을 각자 다른 경로로 흘러온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한강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이름으로 합쳐 서해로 흘러가는 것에 비유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신랑은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며 이날의 주례사를 떠올렸다.
"제가 부모님의 사랑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새삼 깨달아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됐고 신부 또한 오래도록 부모님의 노고와 사랑을 통해 성장한 귀중한 사람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부모님도 저를 키워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며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김 교수는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신부임을 보여주는 것이 주례의 의무라고 말했다.
"정형외과는 그 어느 과보다 강의 중에 사진을 많이 보여줍니다. 이렇게 PPT 강의에 오랜 세월 익숙해지다 보니 이런 주례사가 맞는 것 같아요. 이 PPT 주례사는 당사자는 물론 모든 하객의 관심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함으로써 정숙한 분위기와 진정한 축복 속에 결혼 예식을 이끌어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