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올해 중장기 과제로 '인터넷전문은행'을 검토 중인 가운데 IT업체들은 손을 털고 나온 것으로 알려져 금융 혁신에 김이 빠졌다.
13일 IT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인터넷 전문은행에 들어가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당장 자체은행을 만들기 보다 관련 법률과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차차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는 설립 한다, 안한다 말하긴 이르다"며 "좀 더 지켜본 후에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관계자도 "법률적으로 가능한 상황도 아니고, 당장 하겠다고 말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내부에서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과 IT간 합종연횡을 유발해 금융산업이 다양한 형태로 재정비될 것"이라던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호언이 무색해져버렸다.
IT업체가 불참할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은 '반쪽 혁신'으로 전락할 우려가 큰 것.
◆ '인터넷 전문은행', IT·금융 융복합 사례로 '주목'
인터넷 전문은행이란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온라인으로만 은행업을 영위하는 은행이다. 이는 영업점 없이 영업한다는 점에서 점포 유지비와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이 적게 들어 경쟁력이 있다.
당초 이 은행은 전세계적인 핀테크 열풍과 한국판 텐센트, 알리바바를 만들자는 주문에 힘입어 IT, 금융권과의 대표적인 융복합 사례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법률의 장벽에 가로 막힌 IT업계가 활발하게 참여를 하지 않을 경우 다양한 형태로의 혁신적 금융산업 탄생을 점치기엔 여전히 이르다.
금융권에서는 일단 '핀테크'의 일환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특히 정체된 수익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스마트 금융에 힘을 주는 모양새다.
실제 IBK기업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 수준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뱅킹 통합플랫폼 'IBK 원(ONE)뱅크'를 이르면 오는 상반기 중 선보일 예정이다.
키움증권도 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KB국민은행과 신한, 농협은행 등도 스마트 금융부 산하에 핀테크 팀을 새로 꾸려 스마트 금융을 육성할 방침이다.
하지만 '인터넷 전문은행'이 국내에 도입되고 성장하기까지 남은 숙제도 산적하다.
현재 국내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금융실명제법과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등 각종 규제 정책이다.
법률상 금융회사는 거래 고객의 실질 명의를 확인해야 하는데 영업점이 없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영업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비금융기업이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탓에 네이버 등은 설립 요건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도 인터넷 은행의 정체성이나 자회사 참여방안, 최저 자본금 등 인가 기준과 규제 감독 기준 등도 명확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에 금융위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제2금융권, IT업계 등 인터넷은행 설립 후보업종 관계자와 금융감독원, 금융연구원,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지난 9일 첫 출범한 TF는 매주 회의를 열어 금산분리 완화, 비대면 본인확인 허용 등과 관련한 방안을 마련한 뒤 3월쯤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 산업 경쟁 격화-가계부채 등 숙제도 '산적'
한편 전문가들은 고객편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지만 산업 전반과 관련해서는 경쟁 격화를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키움증권의 경우 온라인 부문 강점이 부각되면서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시 금융상품과 대출 등 금융투자 플랫폼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개척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목받았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한다고 해서 당장 은행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지는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쟁 격화에 따라 은행 산업 전반에는 부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연구원은 "핀테크의 관건은 은행업의 핵심인 여수신 비즈니스 진출 여부인데 NIM 축소등 최근 은행산업의 수익성 악화 트렌드와 제도적·기술적 진입 장벽 등으로 인해 비은행회사의 빠른 진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성화될 경우 온라인이 금융상품의 대고객 채널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소비자 후생은 증가시킬 수도 있겠지만 업계 전반적으로는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성 추가 악화를 수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키움증권의 인터넷은행 '설립', 나아가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본다"며 "그렇지만, 이와 무관하게 '핀테크' 활성화의 수혜주로써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높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원은 또 "기존 은행이 인터넷뱅킹을 도입하는 경우, 지점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 경우 모두 기존 은행에 비해 수익성 측면의 우위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현 국면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가능성까지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중대한 과제는 금융실명제 완화"라고 분석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가계부채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예대업무를 인터넷 채널로 단순히 확대하는 것은 가계부채 위험을 확대할 우려가 있다"며 "가계부채로 개인과 자영업자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의 사업모형 다변화를 유도해 금융산업의 혁신이 이뤄지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