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하나금융그룹이 요동치고 있다.
통합을 주도하던 임원 3명은 옷을 벗었고 직무대행체제인 하나은행장 자리는 공식 선임을 앞두고 있다.
◆ 통합 장기 표류 가능성 대비…"이의 신청 등 방안 검토"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9일 그룹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고 차기 하나은행장을 확정·선출키로 했다.
앞서 하나금융은 지난 6일 임추위 1차 회의에서 김병호 하나은행장 직무대행과 함영주 충청사업본부 담당 부행장, 황종섭 영남사업본부 담당 부행장 등 3명을 하나은행장 후보로 추천했다.
이는 법원의 가처분 용인으로 모든 합병 절차가 중단된 데 따른 조치다. 그간 하나금융은 외환은행과의 합병을 고려해 행장 선임을 미뤄왔다.
그러나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낸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합병의 장기 표류 가능성에 대비책을 마련한 것이다.
실제 하나금융은 오는 6월 말까지 하나·외환은행의 통합을 위한 주주총회 개최와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하나금융은 은행 합병을 주도한 임원의 사표도 수리했다.
앞서 통합추진단장을 맡았던 이우공 하나금융 부사장과 정진용 하나금융 준법담당 상무, 주재중 외환은행의 기획관리그룹 전무는 자진 사임의사를 밝혔다.
당초 2월 1일이었던 예정 합병기일이 4월 1일로 두 차례 미뤄지는 데 이어 조기 통합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데 따른 책임을 진 셈이다.
자진사임 형식이긴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해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법원의 가처분 수용 결정은 은행 경영진은 물론이거니와 금융당국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이들 임원 3명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하나금융은 지난달 금융위에 제출했던 하나·외환은행 통합 예비인가 승인 신청도 철회했다.
하나금융 측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존중하지만 금융산업은 여타 산업과 달리 선제적인 위기대응이 없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이의 신청을 포함한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박성호 전무와 권길주 전무를 각각 전략담당(CSO) 임원과 준법감시인에 선임하고, 곽철승 상무를 재무담당(CFO)에 맡겨 합병 추진 업무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사진 왼쪽부터) 황종섭 부행장, 함영주 부행장, 김병호 하나은행장 직무대행
◆ 김정태 회장, 리더십 타격…연임은 이상무?
한편 금융권에서는 하나·외환은행 통합 절차 중단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연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오는 3월말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김 회장은 '조기통합 대박론'을 내세우며 통합절차를 강행해왔다.
하지만 가처분 결정으로 김 회장의 리더십에 금이 간 것.
물론 금융권에서는 통합과 상관없이 김 회장이 조직을 계속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못미치며 이에 따른 책임론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4분기 51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분기 보다 81.4% 감소한 규모로 모뉴엘과 삼부토건 등 2800억원에 이르는 일회성 요인이 영향을 줬다.
계열사인 외환은행 역시 모뉴엘 대손비용 682억원과 외환파생 관련 손실에 따라 전년대비 17.8% 내린 3651억원의 당기 순익(연결기준)을 시현했다.
이에 외환은행 노조 관계자는 "외환카드 분리로 6400억원 자본금이 이탈하는 등 2012년 피인수 이후 외환은행 실적이 급락하고 있다"며 "수익성 하락은 김정태 회장 경영실패의 결과로, 이에 대한 검증과 해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투자 매력도 제고 역시 그에게 떨어진 과제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나·외환은행의 합병작업은 6월까지 중단돼 (하나금융에) 악재"라며 "예상과 다른 결과 앞에서 관련 임원이 물러났지만,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하는 조직문화 산물은 아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은행 조기 통합을 통한 비용시너지 발생을 기대했지만 법원이 외환노조의 합병 잠정 중지명령 가처분신청을 수용함에 따라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지난해 9월 이후 주가가 약 30% 하락하면서 큰폭의 초과하락세를 시현 중"이라고 평가했다.
최 연구원은 또 "절대적으로 낮은 주가 수준에도 불구하고 투자심리 개선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은행 연간 순이자마진(NIM)이 지난해 대비 상승할 수 있다는 회사측의 가정은 너무 낙관적으로 순익 전망치인 1조2000억원도 지나치게 공격적인 수치"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