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허인창의 이름 앞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엑스틴 멤버, 힙합 1세대, '여고생 래퍼' 육지담의 스승 등. 그는 "난 그냥 허인창이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사람들이 찾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97년 엑스틴으로 힙합신에 첫 발을 내딛은 뒤로 그는 쉼 없이 달려왔다. 국내 힙합신의 역사를 관통해 온 그에게 수많은 수식어는 어쩌면 훈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 힙합 1세대
허인창은 최근 새 앨범 '이 계절의 맛'을 발표하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현역' 래퍼인 그에게 '스승'이라는 다소 낯선 호칭이 붙었다. 지난해 엠넷 '쇼미더머니3'에 참가한 여고생 래퍼 육지담의 랩 선생님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대견하고 뿌듯해요. 아빠 같은 마음이에요. 지담이의 스승이란 호칭은 괜찮지만 힙합 1세대라는 말은 싫어요. 그런 이미지는 별로예요. 최신 음악을 해도 '예스럽게' 보일까 걱정되거든요."
그는 제자에 앞서 '쇼미더머니2'에 출연해 2차 예선에서 탈락한 바 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음악적인 면에선 큰 도움이 됐죠. 절박함이 사라지고 있던 때였거든요. 지나고 나니 일찍 탈락한 게 잘 된 일 같아요.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많은 걸 깨달았으니까요."
탈락 이후 그가 발표한 노래 '1세대' 가사엔 '내가 1세대, 없었어 롤 모델, 달고 살았어 입에, 늘 비겁한 핑계'라는 부분이 있다. 힙합이 낯선 장르였던 시기에 음악을 시작했던 자신의 노력이 부족함을 반성한 것이다.
"당시엔 제대로 된 클럽이나 힙합만을 위한 무대가 턱 없이 부족했어요. 행사장을 가면 트로트·댄스·발라드 가수 사이에서 기다렸다가 '세이 호~'를 외치고 랩을 했죠. 그래도 현장 분위기는 정말 뜨거웠어요. 래퍼들 각자 개성도 뚜렷했고 유행을 따라가지도 않았죠. 하지만 뛰어난 실력이 있어도 이렇다 할 수익이 없으니 관두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지금만큼 무대가 있었어도 제 추억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의 말대로 국내 힙합신의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다. 힙합 앨범이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는 일도 흔해졌다. 하지만 그는 힙합이 이제 주류 음악이 됐다는 평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힙합의 영향력이 커졌으면 대부분이 그걸 느껴야 하는데 극소수의 래퍼를 제외하곤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힙합이 아니라 '쇼미더머니'가 유행인 것 같아요. 스윙스나 도끼(DOK2)같은 친구들을 보면 언더에서 활동해도 성과를 거두죠. 사막 한 가운데 씨를 뿌려 나무를 키운 것과 같아요. 그 친구들은 자기 자랑해도 돼요."
◆ 음악은 죽는 날까지
그는 제자가 요즘들어 가사에 자꾸 욕을 쓰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오랫동안 음악을 해 온 만큼 그에겐 확고한 철학이 있다.
"DJ DOC 형들이 2000년에 발표한 앨범에서 욕을 했는데 큰 화제가 됐어요. 기득권을 향해 돌을 던진 것과 같았으니까요. 그런 욕은 용기가 필요해요. 하지만 그 이후에 여러 후배들이 무분별하게 이슈를 만들기 위해 가사에 욕을 썼는데 그런 건 지양해야 해요."
그는 용기가 부족해 가사에 욕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가사가 아니면 아예 싣지 않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어떤 친구들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회운동가인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진짜로 목숨을 걸고 '디스(DISS)'해야 할 대상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아요. 요즘 노래 가사 속 욕은 소신도 용기도 명분도 없어요. 그저 유행, 인기, 돈을 따라가는 거죠. 욕에 진정성이 없어요. 저요? 전 용기가 없어서 욕 안 해요(웃음)."
인터뷰 내내 힙합에 대한 그의 열정과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60세가 돼도 앨범 낼 거예요. 미국도 힙합의 역사가 아주 길진 않아요. 런 디엠씨(RUN DMC)가 이제 예순이니까요. 제 영웅인 레드맨, 버스타라임즈, 스눕 독 모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잖아요. 저도 제 입지를 굳혀서 후배들과 신인들과 계속 음악을 하고 싶어요. 문제는 걔네가 절 안 불러주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