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이유비(24)를 '견미리의 딸'로 기억하고 있다면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스물'(감독 이병헌)은 그런 편견을 깨는 작품이 될 것이다. 스무 살 동갑내기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스물'에서 이유비는 이들 속에서 빛나는 여자 캐릭터로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새겨 넣었다.
이유비가 '스물'에서 맡은 소희는 모범생 경재(강하늘)의 여동생이자 경재의 친구인 동우(이준호)를 짝사랑하는 고등학생이다.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연기한 강초코에 이어 또 다시 맡은 여동생 캐릭터지만 솔직하고 당돌하다는 점에서 전과는 다르다. 19금 단어도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발칙한 매력도 있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구가의 서'랑 '상의원'까지 두 편의 사극에서 어두운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해서 밝은 걸 하고 싶었거든요. 감독님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소희 역에 저를 생각했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웠죠. 소희는 예전에 해본 여동생 캐릭터와 달리 조금 더 현실적이에요. 마냥 어리기만 한 여동생은 아니죠."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인 만큼 연기에 있어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소희의 리액션도 평소 이유비가 하는 행동들과 비슷했다. "감독님이 연기에 대해 지시하는 게 없었어요. 처음에는 소희를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닌가 불안했죠(웃음). 그만큼 저를 믿어주신 것 같아요." 드라마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도 '스물'에서 얻은 좋은 경험이었다.
"첫 촬영 전에 소희의 대사 표현이나 리액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갔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사전에 준비해온 것보다 상황에 따라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여유를 갖고 연기하다 보니 조금 더 재미있었어요."
또래들이 함께 한 촬영현장은 늘 유쾌했다. 이유비는 "배우들끼리 촬영하고 모니터링하면서 늘 '빵' 터졌다"며 "그런 분위기가 모여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가 완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 이준호와는 촬영 기간에 음악 방송 MC와 출연자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준호 오빠랑 새벽까지 같이 촬영한 날이었어요. 때마침 2PM이 컴백한 때였거든요. 저는 MC라서 잠깐이라도 잠을 자다 나갔는데 오빠는 잠도 못 자고 사전 녹화를 했대요. 방송국에서 오빠를 다시 만났는데 새벽에 본 후줄근한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정말 '천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죠(웃음)."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귀여운 여동생의 이미지를 갖게 됐지만 실제 이유비는 여동생과 남동생을 둔 장녀다(여동생은 최근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이다인이다). 다른 첫째들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는 늘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자라왔다. 그럼에도 이유비가 지금처럼 여동생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앳되고 귀여운 외모의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배우로서는 지금의 이미지가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비는 "지금은 '스물'이 개봉했으니까 소희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지 변신에 대해서도 "다른 작품에서 기회가 온다면 그때 생각하려고 한다"며 "지금 머릿속은 소희 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려준 어머니의 존재가 부담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이유비는 욕심 내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서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보여주는 게 배우로서의 목표에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열심히 연기하면서 한 단계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니까요."
사진/라운드테이블(이완기) 디자인/최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