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성기 그리기' 논란에 가려진 민낯
"자신의 생식기를 그려오라. 거울이나 셀카봉을 이용해도 된다."
서울 H대학교 교양학부의 모 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로 이 같은 요구를 했다. 이 과제를 받고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부 학생들은 당황했고 그 감정들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토로했다.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이로 인해 과제를 거부하고 싶다는 것.
일부 게시판에서는 갑론을박까지 오고갔다. 대부분 과제를 내준 교수를 궁지로 몰았고, 일부는 학교 망신이라며 학생을 비난했다.
내용을 접한 학교 내 상담센터는 "해당 교수에게 사실을 확인한 뒤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해당 교수는 자기 몸의 소중함과 성적 자기 결정권, 주체성 등을 논하기 위한 과제라고 항변했다. 내 몸에 대해 알아야 다른 이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는 얘기였다.
유럽 교육권에선 성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취지로 종종 이 같은 과제를 내준다. 우리나라도 초기 단계지만 이 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
일례로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선 만든 워크북 '명랑 성생활백서' 한켠에 '성기 그려보기' 코너가 마련돼 있다.
성기도 다른 신체부위처럼 소중하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성적 주체성, 자아 알기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학생과 교수간의 소통부족이었다.
강의실에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내지 과제의 함의(含意)를 파악할 정도로 교수-학생 간 신뢰도가 높았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해당 과제가 비단 이 학교에서만 출제된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교수와 학생, 학교 모두 처신을 하는데 있어 미흡했다. 교수는 과제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고, SNS에 맥락 없는 글을 올린 학생들은 성숙하지 못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의 말에 집중하면서 미처 교수의 의중을 살피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교수는 배제됐고 이상한 과제를 낸 교수로 낙인이 찍혔다. 성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공론장에 무언가 올려야 한다면 그건 성보다 소통이 우선 되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