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피 땀흘려 기업을 일군 오너도 비참했고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기업을 이끈 오너도 끝은 불행했다. 정치판에 뛰어든 기업오너의 정계 인생 마지막 모습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5일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혼신을 다해 세운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정치를 할 결심을 했는데 그때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말렸다고 한다"며 "정치는 모든 걸 잃을 수 있을 수도 있다며 만류했다고 하는데 그건 잘 한일"이라고 말했다.
'호암자전' 등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다. 기업인이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현실에 환멸을 느낀 이 전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홍 전 회장이 만류했고 1년여간의 고심 끝에 정치가 아닌 언론사업을 선택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권력은 무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이 전 회장의 '재계 라이벌'이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1992년 정치일선에 뛰어들었다. 정 전 회장은 김동길 당시 연세대 교수의 '삼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낚시론(청산론)'에 동조, "평생 정치인들로부터 당하느니 내가 정치를 하면 치사하게 살 필요 없을 것"이라며 정치판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3월 총선에서 31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같은 해 12월 대선에 도전, 338만여표를 얻는데 그쳐 3위에 머물렀다.
시련은 빨리 찾아왔다. 김영삼 정부로부터 현대그룹과 계열사는 고강도 세무조사, 검찰의 선거법 위반 수사 등 고통에 시달렸다. 결국 정 전 회장은 1993년 3월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났지만 업무상횡령 등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1995년 8월 19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정 전 회장에게 "이제 딴 생각 말고 국민을 생각해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전념해 달라"고 충고했고 정 전 회장은 한때 정적에게 고개를 숙이며 현대그룹을 발판으로 정치한 데 대해 사죄했다.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은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도전, 낙선한다. 그러나 2년 뒤 충남 천안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한다. 백범 김구선생의 손녀사위인 김 전 회장은 '신사풍'으로 무난하게 정치를 했다는 평이다.
2012년 총선에서 40.02%를 득표하며 아쉽게 낙선했지만 서강대 동문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 화려한 복귀를 꿈꿀 수 있게 됐다. 김 전 회장은 '친박(친박근혜)'계로 분류되면서 여당 대선 선대위 종합상황실 부실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열풍 속에 재계인사인 그는 결국 친박 주류들에게 집중 견제를 당하면서 공직에 한번도 몸담지 못하고 지난해 3월 빙그레의 등기이사로 복귀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친박에게 '토사구팽' 당한 셈이다.
가난하게 태어나 신문·약 배달, 폐지 판매 등으로 돈을 벌어 2003년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경남기업을 인수해 연 매출 2조 원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인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성 전 회장은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 비례대표 2번을 받았다. 그러나 자민련의 몰락으로 금배지를 달지 못한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던 성 전 회장은 마침내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 당선된다. 당 원내대표까지 맡았던 성 전 회장은 총선 전 지역 주민에게 무료 음악회를 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4년 6월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이 확정된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수사를 받던 지난 9일 친박 실세들의 로비 리스트만 남긴 채 자살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들 기업오너들의 공통점은 사업가로 성공한 후 정치권력까지 거머쥐려는 욕심을 냈다는 것"이라며 "재계에선 중앙에 있었지만 정계에선 철저히 변방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