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현 대한트라우마협회 회장(차의과학대 미술치료대학원 원장)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생존 학생들과 유가족들이 당시 상황이 재현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괴로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탑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는 대개 40, 50대로 이들과 비슷한 연령층에 있는 학부모들 역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 당하는 세월호를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오열하는 피해 유가족을 TV를 통해 지켜보다 보면 인간의 공감 본능이 자동적으로 발동한다. '내 아이가 타고 있다면…'이란 생각을 이 연령층은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됐다는 것이다.감수성이 예민하고 또래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연령층도 상황이 좋지 않다. 전문가들은 또 상당수 국민이 세월호 생존자의 정신적 외상과 비슷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형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통상 '서바이벌 증후군'을 겪는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 정신적 외상으로 이어진다. 극도의 무력감이나 자책감, 분노나 공격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서바이벌 증후군의 극단적 사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이다. 자신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이 비극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구출된 아이들, 사망·실종자 가족 등 피해 당사자의 대리 외상이 주변으로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당사자→가족→친지·이웃 등으로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리 외상을 입을 경우 '공포·무기력·분노→불안→불신'으로 이어지는 심리 변화를 겪게 된다고 설명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학생들의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현상은 국민적 불안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생들이 겪는 트라우마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극복을 위해 김선현 대한트라우마협회 회장은 "정부와 국민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월호 관련 학생들의 도보행진 등 여러 추모행사를 정치적인 의도로 해석하는 것은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김 회장으로부터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들어 보았다. (일문일답 전문)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학생들과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와 PTSD는 어느 정도인가?
- 지금 세월호 참사의 직접 피해 당사자인 유가족들과 학생들은 제대로 자신들의 고뇌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학생들은 어른들보다 심리적으로 부담을 더 느끼고 있는 측면이 많다. 어른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외부 자극이나 관심이 오히려 부담되고 현실도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따라서 피해 학생들은 불안감과 우울증 그리고 1주기를 맞아 세월호 트라우마가 재현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은 대인관계를 기피하거나 이유없이 아프기도 한다. 지나친 관심이나 언론보도 그리고 세월호 관련 보상에 대한 정치적 발언들도 치료에 독이 될 수 있다.
피해 학생이나 유가족들에게는 어떤 점들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나
-유가족 특히 학생의 부모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부모들은 정부의 보상보다 자식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이 더 부끄럽고 견디기 힘들다. 정의로운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부모의 심정에서 보면 무엇이 정의인지 알게 된다. 죽어서 자식을 만나려면 세월호의 진상이 규명되어야 하고 책임자들이 처벌되어야 한다. 그것은 부모의 입장이 되면 수긍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세월호를 끌고가서는 안된다. 그럴수록 학생들의 치유는 더디고 예상치 못한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학생들을 위해서 정부나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덮고 피하기 보다 기억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나 정치 기타 여러 가지 다양한 얘기들을 세월호 전과 후로 비교하려드는 것도 문제가 된다. 피해 학생들과 유가족들을 위해서 정부나 국민은 미국의 9.11테러를 참고하면 좋겠다.
테러 후 미정부와 미국민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고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교통사고나 보상문제로 세월호 참사를 이해하는 것은 유가족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제2의 세월호참사를 예방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날로 심각해지는 각종 재난 대응 문제를 두고 그저 개인과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현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재난으로부터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앙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