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승부수 띄운 檢, '洪 1억 수수' 혐의 '날짜·장소' 특정 안 해
알리바이 기회·증거인멸 차단 의도…법정서 '승부수' 포석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이 연막전술을 펴고 있다. 첫 사법처리 대상자로 겨냥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구체적인 혐의를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증거인멸 기회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11일 검찰은 홍 지사의 금품수수 의혹 수사 초기부터 극도의 보안 속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주요 참고인과 달리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50)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소환 조사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제기한 '지하주차장 돈 수수설' '공천헌금설' 등 각종 의혹에도 확인을 거부하고 '오보 대응'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범죄사실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외부의 상황이 오히려 수사에 도움이 된다며 느긋한 반응까지 보였다. 어차피 '오염'된 진술이라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응도 피했다. 이에따라 검찰은 8일 홍 지사 소환조사 때도 윤 전 부사장에게 1억원을 받은 구체적인 시점과 장소, 당시 일정 등을 전혀 묻지 않았다.
나경범 경남도 서울본부장을 비롯한 홍 지사의 다른 측근들을 조사하면서도 돈이 오간 정황을 묻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수수 사건에서 육하원칙으로 구성되는 범죄사실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을 받은 장소와 시점이다. 두 구성요소가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기소 자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인으로 일관할 게 뻔한 당사자를 굳이 추궁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아래 검찰은 성 전 회장의 동선·행적을 복원하면서 돈이 오간 시점과 장소를 특정했고 물증도 확보했다.
수사팀 관계자가 10일 "일시·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의혹 당사자를 소환하지는 않는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이 강력통 검사 출신으로 법리에 노련한 홍 지사를 상대로 한 법정 싸움을 유리한 구도로 끌고 가고자 고도의 '수싸움'을 전개하는 셈이다. 홍 지사나 주변 인물에게 '알리바이'(현장 부재 증명)를 만들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윤 전 부사장 회유 의혹을 받는 홍 지사 측의 추가적인 진술 '오염'을 막겠다는 포석도 깔려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기소 전 금품 제공 시기 등이 공개됐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법정에서 번복되면서 무죄가 났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사건 학습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의 연막작전에 홍 지사쪽에서 다소 초조해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홍 지사는 11일 오전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혐의를 재차 부인하면서 검찰이 자신의 소환 조사에서 핵심 범죄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점을 언급했다.
홍 지사는 "(금품수수) 시간과 장소를 묻지 않을 거라면 피의자를 부를 필요가 없지 않나"며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홍 지사는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어 당대표 경선 당시의 일정표도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며 "돈이 오간 시간·장소가 공개되면 일정표를 제출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 범죄사실을 특정하면 추가 소명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까닭에 의혹 당사자를 상대로 핵심 범죄사실을 묻지 않으면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으로 또다른 쟁점을 불러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