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유혹'은 신분과 재력을 갖춘 남자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여성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바탕으로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섞은 범죄 멜로 영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휴식을 취하던 임수정(35)은 여성의 욕망을 다루고 있는 영화에 끌려 작품을 선택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환상이라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여자들은 한번쯤 신데렐라가 되는 상상을 하잖아요. 저도 여자라서 '좋은 왕자님이 오면 어떨까?'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었죠(웃음). 드라마나 영화에 그런 내용이 있으면 괜히 더 설레고요. 하지만 저는 꿈에서 빨리 깨어 나오는 편이에요. 꿈을 오래 꾸지는 않거든요."
임수정이 '은밀한 유혹'에서 맡은 주인공 지연은 비운의 여인이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영화는 지연이 젊고 매력적인 남자 성열(유연석)로부터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절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잡게 된 그 밧줄은 곧 '썩은 동아줄'이었음이 드러난다. 그 순간부터 지연의 삶은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범죄와 멜로가 공존하는 작품이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작품에 가깝다. 임수정에게는 첫 스릴러 도전인 셈이다.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인 만큼 표현해야 할 감정도 많았다. 다양한 감정에 스스로를 내던지며 연기했다.
"지연은 물결 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계속해서 흔들리는 인물이에요. 자신의 욕망을 쫓다 마주하게 된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죠. 그렇게 감정에 휘말려 흔들리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캐릭터가 복잡한 상황에 빠져드는 것처럼 저 자신을 한 번 영화에 던져보고 싶었어요."
공포·멜로·로맨틱 코미디·액션 등 임수정은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왔다. 그러면서도 매 작품마다 섬세한 결로 감정을 표현해 대중은 물론 영화계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감정의 폭이 큰 캐릭터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임수정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선택이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도전의식이었다"고 했다. 극도의 불안 같은 쉽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다보면 "영혼까지 빠져나가는 기분"에 털썩 주저앉아 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느끼는 희열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은밀한 유혹'을 마친 뒤에는 "스스로 보여줄 게 많다는 것"을 느꼈다. 매 신마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과 모습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부터 불안과 두려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이기적인 면모, 그리고 팜므파탈의 매력까지 그야말로 임수정의 '모든 것'을 이 한 편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공감할 캐릭터를 연기한 만큼 여성 관객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 작품에서는 이 다양한 감정 중 하나의 감정에 오롯이 빠져들어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임수정은 한국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작업하고 싶은 배우다. 김지운, 박찬욱, 허진호, 민규동 등 한국 대표 감독들과 함께 한 작품들로 채워진 필모그래피가 이를 증명한다. 물론 그녀도 처음에는 오디션을 보는 신인 배우였다. 연기 전공도 아니었던 이 가녀린 체구의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만난 영화 현장을 실습의 장으로 삼아 몸으로 연기를 익혔다. 그래서 그녀는 "20대의 경험과 필모그래피가 큰 자산이 됐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물론 일이 너무 많았던 탓에 20대를 헛헛한 마음으로 보냈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30대가 된 지금은 여유를 갖고 작품에 임하려고 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 것도 연기에 쏟아 부을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기타도 치고 꽃꽂이도 배웠다. 평온한 일상이 곧 임수정에게 가장 큰 연기 원동력이다.
"20대 시절 영화를 통해 자유롭게 연기를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보다 분명하고 깊이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해요. 여배우답게 성숙한 역할도 맡고 있죠. 예전보다 깊은 감성도 표현할 수 있게 됐고요. 아직도 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많이 있어요. 앞르오는 작품도 자주 할 생각입니다(웃음)."
사진/호호호비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