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백아란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확산됨에 따라 한국 경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메르스 격리 대상자가 1000여명을 넘어서며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커진 데다 엔저 우려와 수출 부진까지 잇단 악재로 경제 전방위적인 부문에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과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회복세를 보이던 내수 시장이 예상치 못한 복병에 다시 얼어붙는 모양새다.
이에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금리인하'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내수 회복세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가 악화될 경우 이달 하순 발표될 예정인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메르스' 복병 만난 한국 경제…내수 시장 '흔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산업생산은 2개월째 감소세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전체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0.3% 내렸다.
이는 지난 3월 0.5% 감소한 이후 2달 연속 감소세다. 수출도 금액 기준으로 5개월 연속 마이너스이고 물량까지 줄어들고 있다.
설비투자와 광공업 생산, 건설투자 등 세부 주요 지표도 하락세를 보였다.
광공업 생산은 전달보다 1.2% 감소했다. 자동차와 통신·방송장비 등이 증가했으나 기타운송장비 등이 감소한 데 따른 영향이다.
반면 소비를 의미하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1.6% 증가했다. 의복 등 준내구재와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 등의 판매가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결국 소비만 부동산, 비내구재 관련 업종을 중심으로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을 뿐 나머지 지표들은 모두 부진한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문제는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소비까지 위축될 공산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관광공사 등에 따르면 올 7~8월 방한을 취소한 외국 관광객은 2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아직 감소폭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한 국내외 소비자들이 공공장소를 꺼리면서 관광과 오락·문화, 음식·숙박업 등이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610만명이 방한하며 내수 회복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계획이 잇따라 취소됨에 따라 유통업종도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JP모간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의 경기 순환이 좋지 않은 시기에 메르스가 발생했다"며 "메르스가 소비 심리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한국 내 메르스 확산 상황과 정부의 대처 능력에 따라 소비재 관련 기업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부처들은 현재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는 등 상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추경 편성·금리인하 카드 나오나?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발전전략' 세미나에서 "메르스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관계 부처와 점검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도 이날 예정됐던 서민금융지원 대책 발표를 이달 중순으로 연기했다. 메르스 해결을 정책 최우선 과제로 두기로 결정한 데 따른 조치다.
메르스가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 정부 역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등 전염병이 생겼을 당시 관련국의 경제성장률이 급락한 바 있다.
사스 발병지였던 홍콩의 성장률은 2003년 1분기에 4.1%였지만 2분기에 -0.9% 내려갔다. 같은 기간 중국은 10.8%에서 7.9%로 급락했다.
신종플루 발생 당시인 2009년 3분기 한국의 여행업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24.9%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여행·관광, 유통 등 피해 업종에 대한 지원과 경기부양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추경에 대한 편성 요구 역시 강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물론 메르스로 인한 경기충격이 지표로 확인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오는 11일 금통위에서 대응하기는 쉽지 않지만 경기 부양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꼽히는 것이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4월 산업생산과 5월 수출 부진, 소비자물가 저공비행 등으로 디플레이션 위험을 방어하기 위한 추가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메르스와 엔저에 직면했다"며 "오는 11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전망했다.
류 팀장은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과 함께 정부가 이달 말 수출 활성화 방안 등을 포함한 해외투자활성화 대책 발표를 예고한 점이 증시 변동성을 축소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메르스가 심화될 경우 코스피지수가 6%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르스 3차 감염이 확대될 경우 코스피는 지난 2003년 홍콩과 증국 증시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충격 당시처럼 6%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실물 경기 측면에서 사스와 신종플루에 따른 충격은 미미했지만 심리적인 공포가 커 소비심리지수는 일시적으로 악화했다"며 "중국 관광객과 관련된 화장품과 면세점, 항공운송, 호텔과 카지노·레저 등의 업종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