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엄지원(37)은 충무로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배우다. 곽경택·홍상수·김현석·이준익 등 충무로 대표 감독의 작품들, 그리고 '박수건달'과 같은 상업영화로 채워진 필모그래피가 그녀만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로 사랑 받았지만 매 작품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3년 '소원'에서는 생애 첫 엄마 역할로 뜨거운 모성애을 연기해 271만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에서 엄지원은 또 한 번의 변신을 감행한다. '페스티벌'로 만난 이해영 감독과의 인연, 그리고 복합적인 장르가 지닌 독특한 매력에 끌려 선택한 작품이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1938년 경성의 한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소녀들의 실종 사건을 그린다. 박보영과 박소담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학생 주란과 연덕을 연기했다. 엄지원이 맡은 교장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이들을 점점 위기로 몰아가는 악역이다. 엄지원은 "교장은 시대를 잘못 만나 비뚤어진 열정을 갖게 된 똑똑한 여자"라며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워킹 우먼'이 됐을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신경질적인 인물을 연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와이어 액션도 처음 도전했다. 그 중에서도 일본어 연기는 이번 영화에서 엄지원이 보여주는 가장 새로운 모습 중 하나다. 교장은 첫 등장은 물론 중요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일본어로 연기를 한다. 일본어와 한국어를 혼재해서 쓴 1930년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자 교장의 캐릭터를 보다 극명하게 그리기 위한 설정이다.
엄지원은 "매 작품마다 첫 신을 가장 신경 쓴다"고 말했다. 첫 등장부터 '연기하는 인물'이 아닌 '진짜 인물'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교장의 첫 등장이 일본어 대사였기에 자연스럽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전 3개월 정도 일본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위해 새로 배우는 기분으로 다시 일본어를 익혔다. '페스티벌'에서 엄지원에게 영어 연기를 시켰던 이해영 감독은 "엄지원은 외국어 연기의 천재"라며 치켜세웠다.
캐릭터 성격 상 혼자 있는 장면도 많다. 자연스럽게 촬영장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악역이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캐릭터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많이 생겼다. 촬영 마지막 날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예전에는 마지막 촬영 때마다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어요.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어요. 교장의 감정이 그만큼 많이 남았었나 봐요. 깊이 사랑한 캐릭터였어요."
엄지원은 지난해 5월 말 '오기사'로 잘 알려진 건축가 오영욱과 결혼했다. 인생의 중요한 변화를 겪은 만큼 배우로서 달라진 점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엄지원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면 조금 넓어진 세계관을 갖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과 똑같다"며 웃었다. 배우로서 바라는 것도 다른 배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보여주지 못한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는 것이다.
"영화도 사람도 매력이 있는 걸 좋아해요. 그 사람만이 지닌 고유한 모습이 곧 매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매력을 존중하는 편이에요. 자신만의 정체성이 있는 게 좋습니다."
사진/라운드테이블(김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