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용산전자상가. 고객은 볼 수 없고 텅 빈 복도 뿐이다./김성현기자
'아키하바라' 선언, 상인들 '시큰둥'…HDC신라면세점 "꾸준히 소통, 증명할 것"
"원스톱쇼핑망 구축·노후시설 개선·문화 마케팅 등으로 관광객 유치해야"
[메트로신문 박상길기자·김성현기자]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용산역 부근 '용산전자상가'. 우리나라 최대의 전자상가인 이곳은 나진상가·원효상가·선인상가·터미널상가·전자랜드 등이 모여있다. 컴퓨터·카메라·휴대폰을 비롯해 조명기기·음향방송기기 등 모든 전자제품을 만날 수 있는 국내 전자 제품의 메카이자 'IT기기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용산전자상가는 전성기를 누리며 대한민국 최고의 상가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10일 기자가 찾은 용산전자상가는 썰렁하기만 했다. 이따금 모습을 드러낸 내국인 몇 명과 외국인 손님이 전부였다. 상인들은 무료한 듯 스마트폰을 쳐다보거나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한 상가 상인은 텅 빈 상가 복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누가 여기옵니까. 인터넷에서 가격비교 다 해가며 사는데, 여기 위치한 점포들도 하나씩 나가고 있어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이곳이 다시 고객으로 찰 일은 없을 겁니다"
전자상가뿐만 아니라 아이파크몰과 인근에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한결같이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며 "그나마 오는 손님들도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비교하고 찾아와 가격이나 제품만 확인하고 지나치기 일쑤"라고 입을 모았다.
인터넷과 전자전문 할인점이 늘며 용산으로 향했던 고객들의 발길은 끊긴 지 오래다. 고객에게 구입을 강요하는 상가 상인인 일명 '용팔이'라는 일부 상인들의 부정적인 모습도 각인되며 고객들은 상가 방문을 더욱 꺼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현대산업개발(HDC·회장 정몽규)과 호텔신라(사장 이부진)은 면세점 유치 공약으로 '용산 아키하바라'화(化) 선언을 했다. 일본 아키하바라를 모델로 한 용산 전자상권의 부활 실현을 면세점 입찰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면세점·용산전자상가 공동마케팅 ▲전자상가 개보수 ▲면세점 상가 연결 시설 리뉴얼 ▲판매품목 중복 최소화 ▲서비스 개선을 위한 교육 등으로 연간 용산전자상가 방문 관광객을 500만명까지 늘린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세계 최대 IT강국이면서도 아키하바라 같은 세계에 내놓을 IT 도시가 없는 대한민국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아키하바라는 전기제품에서 컴퓨터·가전제품 등 모든 종류의 전자제품을 만날 수 있는 일본 최대의 전자제품 상가이다. 각종 피규어·코스프레 의상 등까지 갖춘 아키하바라는 일본 오타쿠(한 분야에 깊이 빠진 극성 마니아) 문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1990년대 말부터 체질개선에 들어가 1970~1980년대의 영광을 다시 재현했다.
하지만 용산 아키하바라 선언에 대한 상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 상인은 "대기업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이용한다"며 "분명히 지켜봐라. 면세점되는 순간 모른 척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대충 내용은 들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야 바랄 것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국회의원과 대기업은 안 믿는다"고 말했다.
면세점 입점에 대한 큰 기대는 없으면서도 상인들은 용산전자상가의 부활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용산전자상가 부활을 위한 방안으로 원스톱쇼핑망 구축과 함께 문화 마케팅의 필요성을 꼽았다.
카메라 상가에서 만난 상인은 "역에서 전자상가로 오는 길이 비교적 멀고 통로가 좁으며 길목엔 노숙자가 있는 등 시설이 낙후돼 있다. 편의시설도 적은 편"이라며 "이런 환경을 개선해야 주 고객층인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손님이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이파크몰 가전제품 코너에서 만난 상인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면 좋겠다"며 "무한도전에서 유행했던 토토가 같은 한류 콘서트가 진행된다면 공연을 보고 아이파크몰로 쇼핑하러 오는 손님이 많아질 것 같다"고 귀띔했다.
CCTV를 판매하는 또 다른 상인은 "상가 매장마다 비슷한 품목을 취급해 손님이 원하는 상품을 못 찾아 불편해하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며 "이 부분이 개선되면 방문하는 손님이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텍스 프리 환급 서비스, 카드 결제 수수료 인하 등 결제 방식 간소화, 온라인 쇼핑몰 강화, 주차공간 확대 등도 상권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됐다.
한편 HDC신라면세점 측은 현재 용산전자상가 상인회와 수시로 만나 전자상가 개선 방안을 조율하는 중이다. 상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HDC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상인들의 불신은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껏 봐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최대 과제는 상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꾸준히 소통하고 설득해 '면세점용 쇼'가 아닌 것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